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등록 : 2018.01.04 14:22
수정 : 2018.01.04 18:53

[북 리뷰] 칸토 팝ㆍV팝ㆍT팝을 아십니까

아시안 팝에 내딛는 첫 걸음, 신현준 외 ‘변방의 사운드’

등록 : 2018.01.04 14:22
수정 : 2018.01.04 18:53

아시아 각국의 팝 역사를

현지인 13명의 글로 조명

서양팝의 모방에서 시작

변방의 촌스러움을 벗고

이젠 서양팝과 동시대성 획득

1960~75년 활동한 캄보디아 여가수 펜 란의 앨범 ‘Roam Chea Mouy Meung Twist(트위스트 춤을)의 표지. 가만히 서서 노래했던 가수들과 달리 무대를 휘저으며 저항정신을 표출했던 펜 란은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집권하면서 다른 가수들과 함께 사라졌다. 채륜 제공

변방의 사운드

신현준ㆍ이기웅 편저

채륜 발행ㆍ456쪽ㆍ2만9,000원

‘방탄소년단, 미국을 강타하다’. 최근 신문을 도배한 이 헤드라인은, 5년 전만 해도 일부 사람들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샀을 것이다.

“두 유 노 김치(Do you know Kimchi)?”로 대변되는 서구 문화에 대한 열패감, 그 이면의 인정 받고자 하는 열망은 한국 문화를 수출상품으로, 문화 창작자를 산업역군으로 보는 시각과 연동돼 왔다. 서구의 가벼운 칭찬 하나에도 폭죽을 터뜨리는 분위기와 그 반대편에 웬만한 성취는 호들갑으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팽팽히 양립했던 이유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K팝 그룹 최초로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하고 미국의 유명 시상식과 토크쇼에 초청 받으면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방탄소년단 공연 앞에서 엉엉 우는 금발 소녀를 보며, 금발로 염색한 방탄소년단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이색적인 현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변방의 사운드’는 반 발 정도 빨리 나온 책인지도 모른다. 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의 신현준, 이기웅씨가 편저한 이 책은 아시아 각국의 20세기 후반 팝 음악의 역사를 다룬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캄보디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현지의 음악평론가, 자유기고자, 연구자 13인의 글을 한데 묶었다.

두 기획자는 “과연 한국인들은 일상에서 아시안 팝을 자주 들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J팝, 홍콩의 칸토팝을 아는 이들은 적지 않지만, 베트남 팝 음악인 V팝, 태국의 T팝, 인도네시아의 I팝, 라오스의 L팝은 생소하기 그지 없다. 이 무지와 무관심을 타파하는 것이 이 책의 일차 목적이다.

태국 얼터너티브록의 개척자라 불리는 모던 독. 1990년대 영국 얼터너티브록이 소개되면서 모던 독 같은 밴드가 등장하자 이들의 공연을 본 대학생들은 너도나도 밴드를 결성했다. 채륜 제공

기획자들은 ‘아시안 팝’이라는 ‘묶음말’이 갖는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경이로운 공통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배에 따른 서구의 절대적 영향, 독재정권과 그에 대한 저항, 민족주의와 모더니티의 갈등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통과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시안 팝은 없다”(일본 대중음악 연구자 호소가와 슈헤이)와 같은 학자적 태도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혹은 게으른 접근일 수 있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캄보디아에서 성행했던 로큰롤은 왜 순식간에 사라졌을까, 왜 지금 홍콩에서 음반산업으로 수익을 올리는 회사는 한 곳도 없을까, 1990년대 태국의 대학생들이 너도나도 인디밴드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일까. 각 필자들은 이 물음에 답한다.

캄보디아는 1975년 공산화 이전까지 아시아에서 서구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나라 중 하나였다.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으로 팝 음악이 번성했고 60년대엔 로큰롤이 전성기를 이뤘다. 당시 자유와 해방의 롤모델이었던 가수들 중 여성 가수 펜 란이 있었다. 꼿꼿이 서서 노래했던 여느 여성 가수들과 달리 펜 란은 무대를 휘저으며 여성의 조혼 풍습을 비웃는 노래를 불렀다. 린다 사판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대 부교수는 펜 란이 “남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크메르 여성의 본분이라는 기존 관념을 깼다”고 평한다. 그러나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즈가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펜 란을 비롯한 대중가수들은 말 그대로 씨가 말랐다. 당시 사망한 시민 200만여명 중엔 팝 음악가의 90%가 포함됐다.

베트남의 볼레로 가수 자오 린. 사이공 음악계가 최고로 활기를 띠었던 1960~75년에 활동한 자오 린은 구슬픈 목소리로 ‘슬픔의 여왕’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채륜 제공

캄보디아가 전후의 상처를 노래로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음악을 발전시킨 것처럼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제 각각의 역사를 현재와 통합시켰다. 기획자들은 제 각각의 역사가 뿌리내린 공유지를 ‘변방성’이라 부른다. “아시안 팝은 서양 팝에 대한 모방에서 시작되었고, 서양 팝의 사운드와 느낌에 도달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하였다. 20세기 아시안 팝의 역사는 서양 팝으로 형상화된 모더니티를 전취하는 과정이면서, 변방의 ‘촌스러움’과 열등감을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 아시아는 그 촌스러움에서 벗어났을까. 책은 그렇다고 말한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의 표현에 따르면, 60~70년대 영미 팝을 따라 하느라 “소화불량에 걸린 사운드”를 냈던 아시안 팝은 이제 “모더니티에의 장구한 여정”을 끝마치고 “서양 팝과의 동시대성을 획득”했다.

서구라는 절대적 롤모델이 사라진 상황에서 생소한 V팝과 T팝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시기적절한 일일 수 있다. 변방의 촌스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순간, 모든 부끄러운 과거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책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개된 곡목들을 유튜브에 검색해 들으면서 읽는 것이다. 노래를 듣기 전에 글로 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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