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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축소,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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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축소,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 낳는다”

입력
2017.06.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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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민주화 30년 특별전 '민(民)이 주(主)인 되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6월 항쟁 기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민주화 30년 특별전 '민(民)이 주(主)인 되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6월 항쟁 기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잘 작동되고 있는가.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이어 촛불집회와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거쳐 왔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쎄요?’라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영원한 과정 속에 놓인 이상향과 비슷한 것이라 모두가 만족하는 대답을 내놓는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28일 한국정당학회ㆍ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동 주최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6ㆍ29선언 30주년 기념학술대회’는 이 주제를 다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박종철ㆍ이한열 열사로 상징되는 6월 민주화 운동을 통해 군부독재정권의 항복선언이라는 6ㆍ29선언을 쟁취한 지 30년이나 지났는데,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여전히 불만족스러운가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건 학술대회의 마지막 순서인 라운드 테이블 토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한국민주주의의 미래’다.

이 토론에서 기조 강연자로 필립 슈미터 유럽대학연구소 교수가 나선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촛불집회와 이어진 박근혜 탄핵 국면을 슈미터 교수의 ‘양손잡이 민주주의’ 개념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양손잡이 민주주의란 좌우파 양쪽이 중도적 세력과 서로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으로, 최 교수는 강고해 보이던 보수세력이 분열해 탄핵에 찬성하고 나선 것이 ‘중도적인 우파’의 탄생에 해당한다고 봤다.

'양손잡이 민주주의'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
'양손잡이 민주주의'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

슈미터 교수는 ‘현존 민주주의와 그 불만들’이란 제목의 기조강연으로 포문을 연다. 미리 배포된 강연문에서 슈미터 교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원래 불만족스럽다고 전제한다. 대의제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회변화에 늘 한 발 늦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서 “위기는 만연해 있고 만연한 위기 자체가 민주주의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좀 더 위태롭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 등으로 인해 ‘대안’이 사라졌다. 교육수준이 올라가면서 도덕적 기대치도 상향 조정됐다.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들, 초정부 기구들의 입김이 세졌다. 여러 전문가 집단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이 개입할 여지가 줄었다. 이에 반해 노동환경과 조건의 변화로 인해 공통의 경험을 지닌 시민은 점점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리하여 슈미터 교수는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를 아예 ‘민주적 황제(Democratic Emperor)’에다 비유한다. 도전해오는 큰 적도 없으니 딱히 자신의 정당성을 내보이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 황제가 “예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왕좌에 굳건하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됐지만, 그 신민(臣民)들에겐 더 벌거벗은 모습으로 보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디스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불만은 투표율의 감소, 정당과의 일체감 축소, 의회를 능가하는 압도적 행정부의 등장 등의 현상을 불러온다.

탈정치화, 전문가주의, 그리고 거버넌스는 이 빈틈을 치고 들어온다. 정치에 참여하려는 시민은 사라지고, 똑똑한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해 주길 바라는 “감사해하는 신민”이 남는다. 정치인들은 그저 당파적 이익이나 쫓는 이들로 격하되고, 전문가집단과 이해관계자들이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이 ‘거버넌스’라는 이름 아래 칭송받는다. 달리 말해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정치의 영역이 끊임없이 축소되고 무력해지는 데 따른 것이다. 이 무력함을 한 방에 뒤엎으려는 노력이 포퓰리즘인데, 포퓰리즘의 위험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30년간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달려온 우리는 슈미터 교수의 진단에 얼마나 들어맞을까.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슈미터 교수의 진단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정권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면서 “시민들은 집단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민주정권이 해고, 실업, 양극화, 격차에 대응하지 못하자 이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슈미터의 지적대로 최저 투표율(2008년 총선 투표율 46%), 정당일체감 상실(민주당의 잦은 당명 변경), 행정부의 압도적 우위(제왕적 대통령 박근혜의 탄생)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임 교수는 그러나 비관적이지 않다. 박근혜 탄핵을 성사시킨 촛불집회는 정치적 불만을 일거에 해소했다. 그렇기에 촛불의 요구를 잘 받아 내 정치의 무력감을 지우는 게 최우선 과제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이 과정에서 빠져 들 수 있는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투표제, 선거구제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외에도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사회 아래 토론에 나선다.

한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6월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맞아 특별전 ‘민(民)이 주(主)인 되다’ 전시를 9월 3일까지 연다. 박종철ㆍ이한열 열사 관련 유품들은 물론, 이후 인권ㆍ평등ㆍ자유가 어떻게 신장됐으며 여전히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되짚는 전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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