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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덮은 계량기도 쩍쩍… 철원 “남극보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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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덮은 계량기도 쩍쩍… 철원 “남극보다 춥다”

입력
2018.01.25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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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 얼어서 안 열려 발 동동

수돗물 못 써 생수 판매 호황

서울은 정전으로 출근길 지하철 중단

정부, 이틀 연속 전력수요 제한 조치

이번 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친 25일 오전 강원 철원군 한 주류 도매창고에서 한 관계자가 속까지 눈덩이처럼 얼어붙은 소주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철원지역은 이날 영하 24도까지 떨어지면서 같은 날 영하 21도에서 영하 25도를 기록한 남극 수준에 육박했다. 철원=신상순 선임기자
이번 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친 25일 오전 강원 철원군 한 주류 도매창고에서 한 관계자가 속까지 눈덩이처럼 얼어붙은 소주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철원지역은 이날 영하 24도까지 떨어지면서 같은 날 영하 21도에서 영하 25도를 기록한 남극 수준에 육박했다. 철원=신상순 선임기자

“아이고 어떡해. 문이, 문이 안 열려요!”

25일 오전 8시30분 강원 철원군 신철원시외버스터미널 인근 고깃집 앞에서 오현주(53)씨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추위에 몸을 바르르 떨면서도 문을 두드리고 한숨만 쉴 뿐. 그는 식당 주인이었다. 여느 때라면 벌써 식당으로 들어가 장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란다.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자세히 보니 문 위에 달린 자물쇠를 풀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려야 하는데, 문틈 사이로 얼음이 얼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십 분이 지나서 이웃이 십자드라이버를 구해와 얼음을 깨부수고 문 틈으로 손을 끼워 넣어 강제로 열어젖혔다. 음료수병으로 ‘톡톡’, 빗자루로 ‘탕탕’ 문 옆에 붙은 얼음을 몽땅 털어낸 오씨는 그제서야 “평생 철원에서 살았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아침 최저기온 영하 24도, 수은주상 이날 전국에서 가장 추웠던 철원군 일대. 오전 7시 해가 완전히 뜨기 전 기자가 도착한 그곳에선 “남극보다 더 춥다”는 아우성이 넘쳤다. 공교롭게도 이날 남극 기온은 영하 21도~영하 25도를 기록하며 철원 주민들의 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님에 힘을 보탰다.

숫자가 24일뿐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공기가 바람으로 몸에 닿을 때는 더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라는 표현을 실감할 정도로 얼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상체는 중무장을 해 그나마 견딜만했지만 발이 가로수에 슬쩍 닿을 때면 얼음장처럼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날씨를 묻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녀도 사람들 찾기가 어려웠다. 실내에 들어가면 “너무 춥다”는 하소연만 들렸다.

물론 ‘추위에 장사 없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1월 한파의 위력을 깔 본 채 음료수 병들을 밖에 내놓았던 사람들은 황당함에 고개를 내저었다. 냉동고를 능가하는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여기저기가 깨져나간 병들. 식당 주인 이종철(53)씨는 “바깥에 음료수 박스를 내놨더니 24개 중 20개가 뚜껑이 열려 음료수가 새나오거나 밑동이 빠졌다”고 했다. 술집과 식당에 술을 공급하는 주류창고 상황도 마찬가지. 맥주병들은 이미 실내로 피신해있었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소주병들은 야외에서 꽝꽝 얼어있었다. 그나마 맥주병들이 대피한 건 10여년 전 한파로 맥주병이 줄줄이 깨져나간 학습효과 덕이란다.

수도계량기 동파는 예삿일이었다. 신철원시장 인근 이종민(50)씨 슈퍼마켓은 집에서 물이 갑자기 나오지 않아 아침식사 준비용 식수를 구입하겠다며 찾아 온 시민들로 ‘호황’이었다. 늘어난 손님에 흐뭇하게 웃고, “난 이럴 줄 알고 계량기를 담요로 덮어놨다”고 자신감을 보였던 ‘철원 토박이’ 주인 이씨도 잠시 후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담요를 벗겨보니 계량기에 금이 쩍 가 있었던 것. 인근 편의점 주인 최창근(58)씨는 “편의점에도 물이 안 나와 손님들이 컵라면도 못 먹는다“고 했다.

신철원시장 야외 주차장엔 밤 사이 방전돼버린 자동차 배터리를 살려내려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동료 차량 배터리와 본인 차량 배터리를 연결하던 직장인 김모(50)씨는 “경유차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방전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철원뿐이랴, 대한민국이 매서운 한파에 꽁꽁 얼어붙었다.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한 시민들이 동장군 입김을 더 이상은 못 당하겠다며 실내를 찾아 빠르게 다닐 뿐, 거리는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밤샘 추위를 견디지 못한 차량이 고장 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직장인, 수도계량기가 터져 식수를 구하러 나온 주부 등 전국 곳곳 장삼이사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영하 16도까지 떨어진 서울에서도 동파 피해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중랑구와 노원구 일대 아파트 6만5,000여 세대에선 전날 오후 7시30분부터 이날 새벽까지 온수와 난방공급이 중단돼 일부 시민이 인근 사우나 또는 이웃집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주민 이모(56)씨는 “딸은 친구 집으로, 아들은 사우나로 ‘피난’을 가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밤 사이 22개월 된 아기가 추위에 떨다가 고열 증세를 보여 병원부터 가고 있다”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도 있었다.

오전 8시54분에는 정전으로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선릉역 구간 운행이 5분여간 중단되면서 출근길 직장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직장인 정모(52)씨는 “택시를 급히 타러 나갔는데, 동토의 왕국이 따로 없더라”고 말했다. 지방에선 가축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충남 당진시에서 소 축사를 운영하는 이모(58)씨는 “소가 추위에 떨까 봐 부랴부랴 히터를 구입해 가동하고 있지만, 불이 날까 걱정도 뒤따른다”고 했다.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6도까지 떨어진 25일 오전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한 뒤 방한복을 챙겨입기 위해 뛰어오고 있다. 김형준 기자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6도까지 떨어진 25일 오전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한 뒤 방한복을 챙겨입기 위해 뛰어오고 있다. 김형준 기자

강추위를 피해 ‘따뜻한 나라’를 찾는 시민들도 있다. 26일 베트남을 가는 직장인 최진영(31)씨는 “이번 겨울 너무 추워 베트남 여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1월 중에만 약 32만8,000여명이 동남아로 나갔거나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매서운 추위에 혀를 내둘렀다. 두꺼운 외투와 귀까지 덮는 털모자는 필수, 일부는 목도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채 경복궁 근정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관광객 모하메드 나시르(22)씨는 “눈이 보고 싶어 찾긴 했지만, 예상보다 추위가 너무 심해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던 일본인 이야모토 유키(32)씨는 “한복 안쪽에 겨울용 티셔츠, 위엔 방한복을 걸치고 다니고 있는데도 너무 춥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전국적으로 난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정부는 이틀 연속 전력수요 제한 조치에 나섰다. 전력거래소는 “25일 오전 수요자원(DR)시장 제도 참여 기업들에게 ‘전력수요 감축 요청(일명 급전지시)’을 발령했다”고 밝혔다. 수요감축 요청은 올 1월에만 4번째(11, 12, 24, 25일)로 이번 겨울 들어선 7번째다. 최고 전력수요도 이틀 연속 경신돼 이날 오전 11시 기준(오전 10시∼11시 순간전력수요 평균) 8,645만㎾를 기록, 전날 세운 역대 최고기록(8,628만㎾)을 하루 만에 넘어섰다.

철원=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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