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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면 정규직” 공공기관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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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면 정규직” 공공기관 희망고문

입력
2017.05.1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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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부서 근무ㆍ잦은 야근 강요

“TO 확보 못했다” 일방 계약 종료

기관 절반이 한 명도 전환 안 해

정부 인턴 가이드라인 유명무실

대학졸업생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청년인턴으로 기획재정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일했다. 1년 기한의 인턴이었지만 정규직 직원들도 기피하는 부서에서 잦은 야근을 해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업무 역량을 인정받아 (인턴이) 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있다”는 대목이 지원공고에 있었고, 직장 상사는 물론 인사부서에서도 “(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1년만 잘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A씨는 지난달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다. “소관 부처에 행정직 정원(TO) 추가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인사부서의 설명. A씨는 “미리 말이라도 했다면 다른 일자리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고된 업무를 하도록 이용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인턴이나 계약직 청년들이 ‘열정페이’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채용 당시나 일하는 중에는,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다’는 달콤한 미래를 주다가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만 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2년 계약직으로 일했던 취업준비생 B씨는 14일 “사실 정규직 전환은 바라지도 않았다”고 푸념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는 얘기에 열심히 일만 해왔다. B씨는 “지난 1년 11개월 동안 어떤 어려운 일을 시켜도 기꺼이 하고자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지난 2월, 계약 해지 통보였다. “정원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 들었다. B씨는 “‘좋은 평가를 받으면 전환 가능하다’는 말은 왜 했는지 모르겠다”며 “왠지 이용만 당한 것 같아 배신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공기관 청년인턴 정규직 전환 현황’에 따르면 2015년 245개 공공기관이 1만3,253명의 청년 인턴을 뽑았는데, 이 중 정규직 전환을 한 명도 하지 않은 기관이 3분의 2가량인 152곳(62%)에 달했다. 전체 인원에서도 3명 중 1명 꼴인 4,033명만이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뿐이었다.

청년들은 무엇보다 헛된 희망을 부추겨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정규직 전환여부가 개인의 업무 성과에 달려있지 않은데도 공공기관에서는 ‘열심히 하면’ 혹은 ‘잘만 하면’ 전환을 해주겠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턴은 “그 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 8시간 초과 근무 등을 시켜도 묵묵히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인턴 가이드라인’을 통해 초과 근무나 채용 조건을 미끼로 부당한 처우를 하지 말도록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인턴이 아닌 정규직 수습사원을 뽑아 충분한 임금과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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