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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세 과학자 안락사 원정, 베토벤 들으며 눈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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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세 과학자 안락사 원정, 베토벤 들으며 눈감다

입력
2018.05.10 15:5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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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구달 스위스서 삶 마감

"질병 없지만 삶 의미도 없어져

생을 마칠 기회 얻게 돼 행복"

조국에 안락사 입법 강조하기도

치명적 질환이 없는데도, 고령이어서 삶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 박사가 9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스위스는 조력자살(안락사)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지 의료기관은 구달 박사가 이날 오후 12시 30분께 안락사 했다고 밝혔다. 구달의 안락사 과정을 도왔던 국제 안락사추진 단체의 필립 니츠케 사무총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구달이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적었다. 구달의 안락사는 수면제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구달은 자신이 죽음의 순간 듣고 싶어했던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인 환희의 송가(Ode to Joy)를 들으며 삶을 마감했다.

생태학자인 구달은 최근 ABC 방송 인터뷰에서 질병은 없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 같다며 104세라는 나이에 이르게 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 바젤의 ‘이터널 스피릿’이라는 기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9일 바젤의 한 호텔에서 10여 명의 취재진을 맞은 구달 박사는 “더는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내일 생을 마칠 기회를 얻게 돼 행복하다. 의료진의 도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는 등 마지막을 앞둔 사람의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음악을 선택하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구달 박사는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고르라고 한다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부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호주에서 삶을 마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다. 호주가 스위스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달 박사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호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안락사 입법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유 불문하고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터널 스피릿 설립자인 모리츠 갈은 취재진에 “마지막 순간 마음이 바뀌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말했지만 구달 박사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80여명이 이터널 스피릿을 찾고 있으며 고령인데다 질병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안락사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72세였다. 가장 젊은 사람이 32세, 최고령자가 99세였다.

구달 박사의 선택을 받은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강제가 아닌 자의에 의해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에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조력자들이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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