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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아마도 괜찮을 중년남자의 눈물

입력
2017.09.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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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두 눈에 살며시 눈물이 고였다. 두 시간 가까이 잔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가 거의 끝날 무렵, 뭉클하게 달아오른 그의 가슴이 결국 눈가를 적신 듯 보였다. 창을 모두 가린 채 조명을 끈 실내는 아주 어두웠다. 나를 비롯해 자리에 앉아 경청하던 10여명의 지인들은 빔 프로젝트가 내쏘는 빛의 파장 덕분에 모두 그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당장 벌개진 콧등 사이를 가를 뻔했던 눈물을 이내 눌러 참았다. 다시 스크린 속 사진이 바뀌면서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진 속 주인공은 79세를 일기로 얼마 전 생을 마친 자신의 부친 고 조방근 어르신과 같은 연세의 어머니 위질순 여사였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사진으로 담아놓으면 제가 받았던 그 사랑의 느낌을 언제라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눈물을 보였던 40대 중반의 조희철씨는 부모님 사진을 찍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서울 관악구청 의회사무국 주무관으로 일하는 그는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고향인 전남 장흥군 장평면 선정리 종정부락을 꾸준히 오가며 자기 가족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왔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고향 부모님을 향한 사진나들이는 해가 더해질수록 횟수도 훨씬 늘었다. 1년이면 명절 때나 한두 번 들르던 데서 몇 달에 한두 번, 다시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늘어났고, 어떨 때는 당일로 부모님 곁을 찾아서 두 시간 정도 머물다 돌아오기도 할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직장생활이나 열심히 하지 왜 그리 자주 오느냐는 부모님의 ‘반가운’ 염려는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자꾸 찾아오면 반가운 게여. 자식이랑 함께 허는 게 젤루 좋으니께!”라는 말씀으로 바뀌셨다고 한다.

그렇게 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희철씨는 사진에 대한 의미 자체에도 변화를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갔는데 언젠가부터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으로 얻게 되는 것이 너무 많더라는 것이었다. 찍을 때는 몰랐던 양 부모님의 가족들에 대한 한없는 심성이 눈에 들어왔고, 평생 농사일을 이루며 삶을 가꾸어 온 두 분이 어떻게 동네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자기존재감을 내보여 왔는지도 하나하나 다 보이게 되더라고 했다. 일상의 단면들을 통해 한결 깊이 바라보게 되면서 두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한층 확장되었음을 그는 고백하듯이 풀어냈다. 사진이란 결국 몸과 마음을 함께 들일 때 그 의미의 폭이 훨씬 넓어지더라는 얘기였다. 특히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평생을 이어 온 농사일을 그만두고 1년 6개월 동안 투병생활 끝에 임종하신 부친에 대한 회상은 짙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곧 닥칠 부친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결국 엄숙한 이별의식을 치르듯 장례식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그의 전언은 새삼 울림 있는 감동으로 귓가를 맴돌았다.

그의 사진 중 한 컷이 계속 머리에 남아 일렁인다. 부친의 임종을 얼마 앞두고 당신의 손을 맞잡은 희철씨가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따뜻한 체온에 흐느끼며 찍었다는 한 컷의 사진. 평소 무뚝뚝하신 분이라 여기며 별다른 사랑의 감정을 나눌 줄 모르셨다고 여겨왔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희철씨의 고백성사 같은 얘기가 사진과 더불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역시 함께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했던 말이기는 한데, 역시 ‘사진은 사랑이다.’

임종진 사진치유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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