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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주산ㆍ웅변ㆍ만화방… 다시 아날로그다!

입력
2017.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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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에 밀리던 주산ㆍ바둑

집중력과 사고력 계발에 좋아

“왕따 피해 방지” 웅변도 각광

#2

‘엄마 세대’ 전유물로 여겨지던

화장품 방문판매도 꾸준히 인기

스마트폰 활용 피부 컨설팅까지

지난 31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신도시의 한 주산학원에서 아이들이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31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신도시의 한 주산학원에서 아이들이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을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 ‘3만7,625+2,348-7,359=?’

지난달 31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신도시의 W주산암산학원. 초등학교 2학년 이산(9)군이 교재에 적힌 문제를 보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인다. 엄지와 검지를 몇 번 놀리다가 곧 답을 적는다. 10여명의 또래 아이들도 열심히 주판알을 튕긴다.

교재 한 쪽당 20여개의 문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페이지를 넘긴 뒤 몇 분 지나지 않아 “다 풀었다”며 손을 들었다. 1시간여의 수업 시간 동안 딴청을 피우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최근 열린 전국 주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군은 “주산 4단이었던 아빠의 권유로 시작한 지 2년 조금 안됐는데 주판알을 똑딱똑딱 움직이는 게 재미있다”며 “주산을 시작하고 나서 반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계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인기 품목 위주로 화장품을 사던 직장인 김효진(34)씨는 지난해부터 화장품 브랜드의 방문 판매로 기초 화장품은 물론 샴푸, 건강식품까지 구입하고 있다. 방문판매는 ‘옛날 아줌마’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점심 시간 회사 근처 카페로 찾아온 방문판매 사원을 만난 뒤 구매한 제품의 용량만큼 샘플을 잔뜩 얻자 기분이 좋아져 이후 고정 고객이 됐다. 김씨는 “처음 친구의 권유를 받았을 때는 ‘엄마 세대’의 방문판매를 예상했는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내 피부 상태 등을 꾸준히 관리해주고 그에 맞는 제품까지 컨설팅 해줘 깜짝 놀랐다”며 “무엇보다 직접 찾아와 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다시 ‘아날로그’가 화제다. 교육과 문화, 산업 등 각 분야에서 ‘아날로그’의 가치가 재조명 받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힐링의 수단으로, 틀에 박힌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를 이끄는 교육 방법으로, 직접 대면을 통한 끈끈한 관계 유지의 틀로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이다.

1963년 전국여자 주산 대회 당시 모습. 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 제공
1963년 전국여자 주산 대회 당시 모습. 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 제공

주산ㆍ바둑ㆍ웅변의 부활

주판으로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해내는 주산은 과거 상업계 고등학생에게는 취직을 위한 필수 능력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하는 은행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전자계산기가 보급되고 컴퓨터 교육이 강조되며 결국 2001년 국가 시행 자격증도 폐지됐다. 극소수의 학원 등을 중심으로 그 명맥만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주산의 효과’가 입 소문 나며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기억력, 뇌 개발 등에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 주산학원을 찾는 학부모도 늘었다.

5일 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에 따르면 서울에만 100여곳의 주산학원 100여곳이 운영중이다. 초등학교 방과후 학습과 사설 공부방까지 포함하면 수백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홍문영 전국주산수학암산교육회 팀장은 “80년대 중반 계산기와 컴퓨터가 보급되며 주산은 교육 시장에서 20년 넘게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며 “하지만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 입 소문이 나면서 주산 교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한일 초등학생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일 초등학생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바둑의 인기 역시 주산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이후 바둑에 대한 관심은 부쩍 늘었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교 5,880곳 중 1,500여곳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바둑반을 운영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바둑이 전략적 사고 등 창의적 역량을 기르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같은 인성 교육에도 좋다는 점을 학부모들이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웅변학원도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내성적인 아이들이 학교폭력이나 왕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학부모들은 너도 나도 아이들을 웅변학원으로 보내고 있다. ‘왕따 아이의 자신감과 사회성을 키우는 과정을 운영한다’는 광고를 내건 웅변학원도 생겼다.

이 같은 아날로그 교육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당장 유행하는 교육보다 사고력과 집중력, 끈기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학부모들의 믿음처럼 아날로그 교육이 집중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4년 “바둑이 학생들에게 통찰력과 직관적 판단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순천향대와 가천의대 정신과 공동연구팀도 2015년 “주산을 배우면 수학 능력과 판단력ㆍ집중력이 향상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 사원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 피부에 맞는 제품으로 화장을 해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 사원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 피부에 맞는 제품으로 화장을 해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제공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가는 방문판매가 기업에는 ‘효자’

화장품 방문판매를 얘기하면 “아직도 ‘방판’이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은 아직도 수만명 단위의 거대 방문판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 업계는 개인별 맞춤 서비스가 가능한 방문 판매를 ‘전통적이고 가장 중요한 채널 중 하나’로 여긴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는 판매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장품 업계는 방문판매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아날로그 유통 방식으로 여겨졌던 방문판매 시스템을 차별화한 경쟁력을 갖춘 유통 채널로 발전시켜 외형 확대에 활용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2014년 1만3,000명이었던 방문판매원(카운셀러)를 지난해 1만8,500명으로 40% 가량 늘렸다. LG생활건강 화장품 전체 매출의 10%가 방문판매를 통해 발생했다.

‘방판의 강자’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전국적으로 3만6,000여명의 방문판매 카운셀러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들만 250여만명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전체 매출의 15%를 카운셀러들이 담당하고 있다.

3만6,000여명의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 사원은 1인당 평균 100여명의 고객을 맡는다. 매일 고객 1명씩을 보통 세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는 셈인데 이는 여성들의 기초 화장품 사용 주기에 맞춘 것이다.

71년 ‘야쿠르트 아줌마’가 등장한 이래 한국야쿠르트 매출에서 방문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90%가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생겨났다. 처음 서울 종로 지역을 중심으로 47명의 야쿠르트 아줌마가 활동했지만 현재는 1만3,000명이 전국을 누빌 정도다.

방문판매의 위력은 판매원의 ‘발품’과 ‘맞춤형 서비스’에서 나온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주거 지역 한 동네를 평균 7년 가까이 혼자서 담당한다. 오랜 기간 발품을 팔아 모은 고객들의 시시콜콜한 정보는 그 어떤 유통업체의 고객관계관리(CRM) 데이터보다 자세하고 정확하다.

변경구 한국야쿠르트 영업이사는 “일대일 대면을 통해 고객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문판매는 불황에도 매우 효과적인 판매 방식”이라며 “아날로그 스킨십 마케팅이 정보기술(IT)을 만나면서 젊은 층도 열광하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냉장 전동카트를 타고 달리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냉장 전동카트를 타고 달리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제공

수기 다이어리ㆍ만화 카페 인기 쑥쑥

일정ㆍ기념일ㆍ메모 등은 스마트폰을 통해 적고 일기도 개인 컴퓨터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게 보편화했지만 여전히 직접 손으로 쓰고 읽는 종이 다이어리의 감성을 찾는 이도 적잖다. 실제로 노트ㆍ다이어리 브랜드 몰스킨의 지난해 다이어리 판매량은 전년 대비 22% 상승하기도 했다. 교보핫트랙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19일 14만6,400여권의 다이어리가 판매됐다.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 다이어리가 여전히 ‘새해 맞이 필수 아이템’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유명 커피전문점에서도 다이어리를 판다. 지난해 연말 카페베네는 ‘월리를 찾아서’라는 캐릭터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투썸플레이스는 묵직한 가죽 다이어리ㆍ볼펜 세트를, 탐앤탐스 역시 다섯 가지 색상의 양장 다이어리를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스타벅스는 2015년 35만부 찍었던 다이어리를 지난해 80만부까지 찍었다. 편의점과 식품업계도 다이어리 제작에 가세했다. 이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가 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추억의 만화방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낡은 책방 느낌의 만화방과 달리 신개념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한 ‘만화카페’는 10대와 20대의 휴식 및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만화카페는 홍대입구와 대학로에 처음 등장했다. 단순히 만화를 보는 곳에서 나아가 보드게임, 카페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해 젊은층의 취향을 저격했다. 현재 만화카페는 1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등장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만화카페 놀숲은 2015년 9월 1호점을 연 이후 최근 매장을 150곳까지 늘렸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이 당연한 것이 돼 버린 요즘 아날로그는 젊은 층에게 오히려 새로운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며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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