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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ㆍ비핵화 병행 추진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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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ㆍ비핵화 병행 추진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입력
2017.07.0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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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독일 쾨르버 재단 연설을 통해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은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 병행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시험발사라는 돌발변수 때문에 평화구상의 수위를 낮추는 방법까지 고민했지만 제재 및 압박과 함께 대화에 방점을 두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통일이라는 단어를 가급적 자제하면서 평화에 방점을 두는 구상을 공개했다.

① 평화체제 구축

北ㆍ中 주장한 ‘평화협정’ 추진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던 사안

문 대통령의 베를린 독트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평화협정 체결 추진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평화체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평화협정 체결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북한과 중국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그 때마다 보수진영이 강력 반발하는 민감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대선 공약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만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북한의 ICBM도발을 계기로 미국에서 선제타격론이 제기되는 등 한반도 평화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지자 정면돌파 카드로 평화협정 체결을 들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다”면서 “점점 더 높아지는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른 지금,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보다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인정받은 것 또한 문 대통령의 자신감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한 것은 기존 정전협정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래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북한의 협정 위반 사례는 수십만 건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이 1994년 정전협정 이행을 감독할 군사정전위 요원을 추방시킨 이후 정전협정은 사실상 실효성을 잃어버렸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불안한 정전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해법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강조해 온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 방안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쌍궤병행’과도 같은 의미다.

② 북한 체제 보장하는 비핵화

북미ㆍ북일 관계 개선도 거론

동북아 조정자 역할 자신감

문 대통령은 그간 우리 정부가 추구했던 북한 비핵화 개념에서 한 단계 더 나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 원칙도 제시했다. 북한이 핵 무기를 자신들의 체제 안정을 위한 핵심 보루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체제 보장과 비핵화를 연동시킨 접근법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고도화되고 어려워졌다”며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 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평화 추구’ 원칙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데 이어 ‘체제 보장의 비핵화’ 원칙에선 북미 관계 개선 등을 통해 미국 등 주변국도 북한 체제를 보장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과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동북아의 조정자로서 폭넓은 역할을 맡겠다는 자신감도 묻어나는 대목이다.

북한은 2012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신, 미국이 인도적ㆍ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의 2ㆍ29합의를 체결한 전례가 있다. 북한이 한달 여 만에 미사일 도발에 나서면서 깨지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북미간 새로 합의를 맺되 한국이 중간에서 역할을 맡는 방식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은 선제타격을 포함한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가장 우려하는 만큼,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선다면 문 대통령이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이 같은 무력사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특히 문 대통령이 북일관계 개선까지 거론한 것은 양국간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제스처다. 핵을 포기하면 북한이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도록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북일은 2014년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관계개선의 전기를 마련했다가 틀어진 이후 좀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③ 한반도 평화 대원칙

남북 공존공영 목표 역설

문 대통령이 ‘베를린 독트린’에서 제시한 첫 번째 원칙은 ‘평화’다. 사실상 통일의 자리에 평화를 놓으며 남북간 공존공영을 역설한 것이다. 통일 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북한 체제를 보장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베를린 독트린의 여러 메시지가 북한이 핵무기를 버리더라도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 대통령은 평화로운 한반도의 길을 가기 위한 로드맵으로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정상선언의 이행을 촉구했다. 두 선언을 관통하는 핵심은 남북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우리 민족이라는 점으로, 핵과 전쟁의 위협 없이,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잘 사는 한반도를 만드는 데 최종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서 ‘3N0’원칙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일방통행식 통일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으로,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며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대원칙에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선제타격 등 군사적 충돌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겠다는 뜻도 담겨있다는 평가다.

④ 중단 없는 비정치적 교류협력

재난 재해 공동 대응부터 제안

문 대통령은 사회 문화 등 비정치적 분야의 민간 교류와 인도적 지원은 정치ㆍ군사적 상황과 별개로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분리 원칙을 천명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제재 국면이 강화되더라도, 남북 교류와 협력의 끈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밝힌 중단 없는 민간교류 및 인도적 지원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운전대를 우리가 주도하겠다는 구상의 각론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낮은 단계의 교류로 남북간 신뢰를 쌓아가면서 더 높은 단계의 협력을 추구해나가는 순차적 해법 모색이다.

첫 번째로 내민 카드는 남북한 재난 재해 공동 대응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하천이 범람하면 남한의 주민들은 수해를 입게 되고, 감염병이나 산림 병충해, 산불은 남북한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며 남북의 공동 대응을 제안했다. 당국 간 교류가 어렵다면 민간 차원의 교류부터 확대해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북한 당국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권 문제에 대해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적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⑤ 한반도 신경제 지도

제재 국면 감안해 북핵 진전 단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선 남북간 경제 협력이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을 제시하며 대북 경제 협력 원칙도 밝혔다. 다만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만큼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북한의 도발로 엄중해진 상황을 감안해 구체적인 제안보다는 청사진 정도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겠다”며 남북한 경제공동체 조성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군사분계선으로 단절된 남북을 ‘경제 벨트’로 이어나가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남북철도 복원은 남북한 경제 벨트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문 대통령은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 등 동북아 협력사업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 국가로 공동번영할 것”이라며 “그때 세계는 평화의 경제, 공동 번영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보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열린 쾨르버 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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