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파킨슨·알츠하이머… 그들은 왜 병명이 됐나

입력
2015.07.17 20:41
0 0
마음의 혼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 발행/1만7,800원
마음의 혼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 발행/1만7,800원

매우 혼동되는 영어 단어들이 psychologist와 psychiatrist다. 전자는 심리학자로 번역되며 후자는 신경정신과 의사를 가리킨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다우어 드라이스마가 신경정신과 의사(혹은 신경과학자)에 관해 쓴 이야기다.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식으로 발견자의 이름이 붙은 신경질환의 탄생 과정을 파헤쳐 과학적 발견의 무대 뒤편에서 활약한 이들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뇌과학 분야에서 병명에 자기 이름을 남긴 12명의 삶과 임상 사례, 명명 경위, 후속 연구 등을 파헤친다. 세르게이 코르사코프,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제임스 파킨슨, 한스 아스페르거, 조르주 질 드라 투렛 등이 각 장의 주인공이다. 심리학과 역사를 매력적으로 결합해 12편의 재미있는 단편소설 모음집처럼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역사적, 지리적, 학제적 의미에서 대표성을 띠는 인물을 골랐다고 귀띔한다. 투렛, 카프그라, 클레랑보는 환자 실증에 초점을 둔 프랑스 정신의학을 대표하며, 알츠하이머와 인간의 뇌지도를 작성한 브로드만은 독일 신경병리학연구의 전통이 낳은 인물이다.

그럼 병명의 시조가 된 사람들이 최초의 발견자일까? 그렇지는 않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이 아니라 재발견이다. 스티글러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어떤 과학적 발견에도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붙지는 않는다”는 법칙이다. 과학적 발견의 공로가 최초 발견자를 빗겨가는 걸 꼬집는 이 법칙에는 어떤 과학적 사실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그저 최초의 목격자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이는 자신의 관찰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다른 발견과 구별되는 새로운 현상임을 증명하고,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원인을 밝혀야 비로소 과학적 발견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과학의 발전은 재발견의 역사이다. 이 책의 여러 마음의 병들도 스티글러 법칙이 적용된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클레랑보증후군에 의사 클레랑보의 이름이 붙은 이유를 살펴보자. “과학공동체가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설득력, 협력자, 그 이름을 제안한 사람이 끼친 영향력 등이 필요”했다. 보네 증후군에서는 드 모르시에가, 아스페르거 증후군은 윙이란 이름과 짝을 이루지만 우리는 그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브로카에게는 페리에, 코르사코프에게는 졸리, 카프그라에게는 르비 발렌시가 있지만 2등은 기억되지 않는 법이다.

명명자로 이름을 남긴 임상과학자들의 삶은 평탄했을까? 뇌의 브로카 영역을 발견한 19세기 후반 프랑스 의사 폴 브로카는 56세 생일을 맞이하자마자 심부전으로 사망한다. 과학 연구를 위해 사후 서로를 부검하는 상호부검협회의 제안자로서 그는 동료들이 죽으면 늘 시신을 해부했는데, 자신도 사후 실험실 조수에 의해 해부되어 포르말린에 담김으로써 인류에 마지막 서비스를 제공했다. 투렛증후군의 투렛은 매독 말기 증세로 정신병의 포로가 된다. 유명한 환자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듣고 환자를 상담하기 위해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바로 폐쇄 병동에 감금된다. 평생 독신이었던 클레랑보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엔 정신과학과 신경학에 관한 폭넓은 의학지식과 과학사 상식이 촘촘히 박혀 있다. 나는 그의 대표 저작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를 읽고 팬이 되어버렸는데, 나의 자부심이 더욱 강해졌음을 느낀다.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