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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유토피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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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유토피아는 없다

입력
2015.06.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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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동물농장' 제목 패러디

비판 타깃 공산주의서 자본주의로

평등 대신 욕망 과잉 체제 꼬집어

자본주의 동물농장/ 존 리드 지음/ 정영목 옮김/ 천년의상상·216쪽·1만2,800원
자본주의 동물농장/ 존 리드 지음/ 정영목 옮김/ 천년의상상·216쪽·1만2,800원

조지 오웰의 1945년작 ‘동물농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을 착취하는 인간을 내쫓고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유토피아를 구가하려다 철저히 실패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당시 스탈린 체제 공산주의를 향해 오웰이 날린 직격탄이었다. “더 평등하다”는 모순적 문장을 통해 작가는, 완전한 평등은 허상이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배제될 때 공동체는 언제 어떻게 전체주의에 잠식당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오웰이 날린 화살은 당시 파시즘으로 기울던 공산주의를 향해 쏟아낸 분노였지만, 냉전체제가 종료되고 자본주의가 세계를 잠식한 지금엔 180도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패러디한 '자본주의 동물농장'의 작가 존 리드. 그는 2001년 미국 9·11 테러 때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패러디한 '자본주의 동물농장'의 작가 존 리드. 그는 2001년 미국 9·11 테러 때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이 작품을 정면으로 패러디한 미국 작가 존 리드 ‘자본주의 동물농장’은 오웰의 농장과 같은 장소에서 출발한다. 시간은 21세기.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에 의해 추방당한 돼지 ‘스노볼’이 돌아와 새로운 시대를 선포한다. 말뿐인 평등 대신 자유가 넘치는 세계, 모두가 노력한 만큼 풍요를 얻을 수 있는 세계, 동물농장이 아닌 동물장터다.

“우리 이윤은 커질 거요. 비용은 낮아질 거요. 전깃불이 개똥벌레 천만 마리처럼 반짝거릴 거요. 꿈이 실현되는 땅이 될 거요.”

스노볼은 인간 마을에서 배워온 첨단 기술을 전파하며 풍요와 안락을 약속한다. 온수와 전깃불, 전기난로, 에어컨, 창문 달린 축사. 처음 맛보는 문명의 이기에 동물들은 눈이 돌아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동물농장엔 입주 신청이 폭주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이 기시감 넘치는 이야기는 곧 비극으로 바뀐다. 동물들은 부를 축적하고 땅을 소유하는 데 혈안이 된다. 소설 속 주간지 ‘데일리 트로터’는 역경을 이겨낸 동물들의 성공담을 연일 보도하고, 스노볼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네 노력의 부족 탓”이라며 준엄하게 꾸짖는다. 욕망은 포만을 모르고 결국 동물농장은 계급 격차, 이주 노동자 차별, 무분별한 환경 파괴, 세대 갈등 문제로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2002년 미국 출간 당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마침 오웰이 1949년 영국 외무부에 넘긴 ‘오웰 리스트’가 폭로돼 오웰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속출하던 시점이었다. 젊은 시절의 오웰은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아나키스트적 사회주의자에 가까웠지만 말년에 급격히 우경화해 비밀 공산주의자들을 고발하는 ‘오웰 리스트’를 정보기관인 M16에 전달했다. 리스트에는 흑인, 유대인, 동성애자에 대한 오웰의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리드의 소설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오웰 유족들은 이 소설이 “오웰이 ‘동물농장’을 통해 거둔 전체주의에 대한 승리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다”며 책을 내면 소송을 하겠다고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책은 출간됐고 뉴욕타임스는 책과 함께 협박 편지까지 모조리 공개해 대서특필했다.

책이 시사하는 바는 비교적 명료하다. 공산주의가 이루지 못한 유토피아를 자본주의는 구가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책 제목에 나와 있다. 원제인 ‘Snowball’s Chance(스노볼의 기회)’는 ‘a Snowball’s Chance in Hell’이라는 경구에서 따온 것이다. 불지옥에서 눈뭉치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 비슷한 경구로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간다’가 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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