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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입력
2016.11.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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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는 대형 위기의 징후

트럼프 등장으로 각종 리스크 커져

국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 해야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재앙은 홀로 오는 법이 없다. 영어에도 아주 유사한 말이 있다. ‘Misfortunes never come alone.’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그렇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가 시스템이 망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식물지도자가 됐고 경제는 마비 상태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분위기를 닮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현철이 국정개입으로 구속되면서 국정 동력을 상실했다. 그때도 식물 대통령이라고 했다. 정책 결정은 혼란스러웠고, 경제는 점차 악화했다. 국회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았고 노동계는 파업을 거듭했다.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통치’를 받는 상황이 됐다. 정치가 흔들리면서 ‘핀볼 효과(pinball effect)'가 나타난 것이다. 정치라는 핀볼이 흔들리면서 줄줄이 다른 핀볼들을 쓰러뜨렸다.

얼음을 쪼개는 것이 작은 바늘이고, 큰 사건에는 징후가 있게 마련이다. 작은 사고가 대형 사고를 예고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그 징후다. 이 게이트가 어떤 핀볼들을 쓰러뜨릴지가 걱정이다. 내년이 고비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되는 해고, 대통령 선거도 있다. 정치는 혼탁을 넘어 무질서의 극치다. 이미 여러 경제지표는 우리 경제가 급전직하의 위기에 있음을 보여준다. 당장 기업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의 위기가 뚜렷하다. 갤럭시노트7의 실패에 이어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미 학계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997년 위기와는 좀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때는 외환위기였지만 이번에는 실물위기라는 것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의 지적이 예사롭지 않다. 1997년과 같이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하루아침에 부도를 겪으며 실업자를 쏟아내는 급성 위기가 아니라, 산업 기반이 서서히 붕괴해 실업자를 쏟아내는 만성 위기라는 것이다. 경상수지, 국가신용등급, 기업부채비율, 단기외채비중 등 금융부문은 단단해졌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GDP 대비 투자비중, 제조업가동률, 청년실업률 등 실물부문이 매우 취약해졌다는 것이 근거다.

외환위기는 국지적 위기라 곧바로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경기 침체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이다. 미국 학계에서도 ‘제2의 대공황’을 우려하고, 세계 경제는 이미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브렉시트(Brexit)만큼이나 ‘검은 백조’(black swan) 현상으로 도드라진다. 당장 각국 증권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조만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문제가 대두하고 관세장벽이 높아지는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대미 수출이 막대한 타격을 받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더욱 커질 것이다.

위기의 시작은 늘 정치였다. 이번에도 박근혜 정권이 문제를 일으켰다. 사이비 종교가 대통령을 영적으로 유린하는 동안 국정은 무너지고 민심은 참담해졌다. 아파트 동 대표의 행태만도 못한 퇴행의 극한을 보여준 불쾌하고 슬픈 사건이다. 이렇게 정치가 썩어가는 동안 경제는 죽어간다. 정치의 불통은 경제가 온갖 절벽과 마주하게 한다. 소비도 생산도 수출도 절벽이다. 갑작스레 영하로 떨어진 날씨만큼이나 체감경기가 차갑다. 급기야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년 경제 키워드를 산업빙벽(ice cliff)으로 골랐다.

상식적으로는 믿을 게 국회뿐이다. 하지만 국회의 과거 행태에 비춰 책임총리를 추대해서 거국내각을 형성하기까지는 부지하세월이다. 올해 안에 마무리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당은 권력 획득에 골몰할 뿐 국가 앞날과 민생을 앞세우는 법이 없다. 현재의 위기조차 개인과 정당의 이해타산에 대입하기에 바빠, 대승적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은 보여주지 못한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오죽하면 국회에서 똥물을 뿌렸을까.

경제는 하루가 급하다. 위기는 도둑처럼 순식간에 닥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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