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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이후에도… 승무원 울리는 '하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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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이후에도… 승무원 울리는 '하늘 족쇄'

입력
2015.03.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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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대부분 자세·품위 계량화… '착색이 심한 치아는 미백하라' 등

세부적 예시 들며 지키도록 강요, 면세품 판매 때 목표액도 정해져

지난해 12월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승무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정비고로 향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승무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정비고로 향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 국내 항공사에서 1등석 기내서비스를 맡고 있는 승무원 A씨는 비행시간 내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1등석 승객은 회사가 신경을 쏟는 VIP 고객인 데다 고객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면 인사평가에서 크게는 20점에서 적게는 6점까지 감점을 받기 때문. A씨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승무원을 배려하는 분들도 많지만 1등석 승객다운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며 사사건건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객들도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 승무원 B씨는 1등석 승객의 말 한마디에 1등석 근무배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 불쾌한 경험을 털어놨다. 3년 전 한 승객이 “요즘 여기에는 왜 늙은 것들만 배치했냐”고 따진 뒤로 소위 ‘젊고 예쁜’ 승무원들만 1등석 근무에 투입됐던 것. 그러다 최근에는 다시 숙련된 고참 승무원 투입 방침이 내려졌다. B씨는 “신참 직원들이 주로 배치되자 이번엔 서비스 불만이 높아져 회사가 방침을 재차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땅콩 회항 사건은 철저히 을(乙)로 살아가는 승무원 세계의 열악한 실태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지금도 항공사들은 ‘고객 제일주의’를 내세워 승무원의 인권을 수시로 침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항공승무원의 인권을 말하다’ 토론회에선 승무원들을 옥죄는 다양한 인권침해 사례가 소개됐다. 항공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승무원 행동모델 수칙부터 문제투성이였다. 말투 화법 표정 자세 품위 등 5가지 영역별로 세부적인 예시를 들어 최상(Best) 및 문제점(Worst) 기준으로 나눠놓고 승무원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국내 한 항공사의 경우 ‘코털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한다’ ‘담배나 커피에 의한 치아 착색이 심하면 미백관리를 통해 깨끗한 치아를 유지한다’ 등의 과도한 신체규정이 도마에 올랐다. 토론자로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고객들의 칭송 또는 불만에 따른 상ㆍ벌점 제도나, 업무상 질병ㆍ재해 시에도 결근하지 않으면 가점을 주는 제도 등은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승무원 역할과 무관한 업무를 개인 실적에 연동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올해 초 아시아나항공의 한 중국 노선의 경우 출항과 입항 시 항공기당 각각 2,543달러, 3,784달러의 면세품 판매 목표액이 정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운수노조 권수정 전 아시아나항공 지부장은 “베이징 노선은 약 80분의 비행 시간 중 안전고도에서 운항하는 60분 남짓한 시간 내에 음료 서비스는 물론 면세품 판매까지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인턴 승무원의 처우는 더 열악하다. 일부 항공사에선 급여 및 복지 혜택에서 차별을 받는 인턴 직원이 정규직 승무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똑같은 강도의 서비스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엔 한 항공사의 인턴 승무원이 프랑스 파리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면세품 판매를 담당했다가 남은 물품 수량과 결제금액이 달라 회사로부터 변상을 요구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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