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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 응급구조단 “우리도 9회말 2아웃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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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야구장 응급구조단 “우리도 9회말 2아웃부터 시작”

입력
2018.05.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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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경기마다 내ㆍ외야 각각 2인 1조 1개팀으로 대기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 응급구조단 부스에서 정진우(왼쪽), 김신혜 응급구조사가 기상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 응급구조단 부스에서 정진우(왼쪽), 김신혜 응급구조사가 기상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경기는 우천 취소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장비 챙기시고 마무리 합시다. 외야조도 철수하시죠.”

지난 17일 오후 6시 서울 잠실야구장.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한 빗줄기 속에서 흘러 나온 장내 안내 방송으로 1층 내야 원정팀 더그아웃 옆에 자리한 약 5㎡(1.5평) 크기의 응급구조단 부스는 분주했다. 이 곳에선 무전기로 우익수 쪽 외야 인근에 대기중인 응급 출동 차량의 팀원 2명에게 상황 종료를 알리는 한편 주변 정리도 서둘렀다.

“오늘은 무사고로 넘겼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날 잠실야구장 응급구조단으로 대기 중인 민간업체 ㈜SOS 소속 팀원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이들은 경기장과 관중석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 항상 2인 1조로 각각 내ㆍ외야에서 안전 지킴이 역할을 맡고 있다.

선수들 충돌에 ‘촉각’…관중석 돌발 사고에도 안테나 세워야

비 덕분에 한숨을 돌렸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하면 이들의 눈초리는 ‘매의 눈’으로 변해야 한다. “경기장에선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 지 모릅니다. 투수가 던진 볼에 얼굴이나 머리를 맞는 사구가 나오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슬라이딩을 하면서 손발이 골절되거나 타자가 친 강한 타구에 맞아서 다친 선수들도 나와요. 공만 보면서 수비를 하다가 선수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경기 중엔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응급구조단의 홍일점인 김신혜(30) 구조사가 전한 사고 시나리오는 다양했다. 효과적인 긴급 처방을 위해선 응급 구조사들에게 사고 직전 정확한 상황 모니터링은 필수적이다. 경기가 끝났다고 해서 긴장을 풀 수도 없는 게 응급구조사들의 현실이다. 지난 15일엔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팀의 한 선수가 홈을 밟는 과정에서 동료들의 과도한 세리머니로 기절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긴급 출동 덕에 위험한 순간은 넘겼지만 자칫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관중석도 응급구조사들이 항상 살펴야 할 위험지대다. “관중들이 잠시 경기에서 눈을 뗀 사이에 타자들의 파울 볼에 맞아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어떤 관중들은 맨손으로 파울볼을 잡으려다 다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성 관중들의 경우엔, 여름철 강렬한 햇빛에 쓰러지는 분들도 나와요. 구조사들이 빠르게 움직여야 할 순간들입니다.” 관중석까지 면밀하게 살펴한다는 게 정진우(38) 구조사의 설명이다.

이승우 응급구조사가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 외야의 응급 출동 차량에 탑승하면서 경기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승우 응급구조사가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된 지난 17일 서울 잠실야구장 외야의 응급 출동 차량에 탑승하면서 경기장을 살펴보고 있다.

여름철엔 모기가 최대 ‘적’… 만원 관중들의 응원에 난청도

이처럼 선수들이나 관중들에겐 경기장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이지만 응급구조사들에게 말 못할 속사정이 적잖다. 프로야구 팀간 라이벌전이나 중요한 경기의 관중석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가득 메운 만원 관중 사이의 계단이나 통로를 뚫고 가는 길은 험난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응급 출동 차량에 탑승한 상태로 현장을 지켜야 하는 외야측 응급구조사들의 근무환경 또한 녹록한 게 아니다. “사고가 언제 터질 지 모르기 때문에 응급구조사들은 항상 차량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름철엔 더워도 차량에 시동을 걸 수가 없어요. 자동차 매연 때문에 관중들이 싫어하거든요. 당연히 에어컨도 켤 수 없어요. 무더위 속에서 모기들과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이승우(40) 구조사는 외야측 응급구조 차량에서 겪었던 불편한 경험을 이렇게 털어놨다.

열광적인 관중들의 함성은 구조사들에겐 덤으로 따라오는 괴로움이다. “야구장에서 다른 관중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거나 TV로 시청할 때는 잘 모르지만 야구장 관중석에서 나오는 응원 소리는 옆에서 들으면 상상이상으로 엄청납니다. 청력이 약한 사람은 외야측 응급 출동 차량에서 일하기 힘들어요. 또 다른 스트레스거든요.” 이날 외야측 응급 출동 차량을 살핀 정승민(41) SOS 대표는 구조사들의 이런 고충을 전했다.

그래도 응급구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야구장을 떠날 순 없다고 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란 말이 있잖아요. 우리도 그래요. 경기는 종료됐어도 우리는 끝난 게 아니거든요. 관중들이 모두 다치지 않고 빠져나가야 끝이 납니다. 야간 조명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말이죠. 그게 선수와 관중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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