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정 기자

등록 : 2017.12.30 09:00
수정 : 2018.01.03 14:33

[인물360˚] 사면 후에야 인권탄압 사과한 독재자,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

등록 : 2017.12.30 09:00
수정 : 2018.01.03 14:33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을 통해 재임기간 있었던 독재행위와 부패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반인권, 부패 혐의로 페루 법원으로부터 25년형을 선고받아 12년째 복역하다가 지난 25일 건강을 이유로 사면 받았다. 페이스북 캡쳐.

“나의 정부가 한편으로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다른 한편에서 동포들을 실망시켰다는 것을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독재자의 첫 사과였다. 지난 26일(현지시간) 페루의 제 90대 대통령이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79)는 페이스북에 영상을 올리고 과오를 인정했다. 권좌에서 내려간 지 약 20년만이다.

1990년 아시아계 최초로 남미국가의 대통령이 됐던 후지모리는 헌법 개정과 반대파 탄압을 통해 10년간 페루를 통치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재임기간 저지른 인권침해와 부정부패를 이유로 2009년 페루 법원에서 2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 중이었다.

그런데 지난 25일 쿠친스키 현직 대통령이 후지모리의 건강을 이유로 사면을 결정하면서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풀려났다. 후지모리는 그 동안 구강암ㆍ부정맥 등으로 수차례 입원했다. 사과 영상도 지난 23일 심장 이상으로 병원에 긴급 입원한 뒤 찍은 것이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재임 당시 게릴라 소탕작전으로 희생된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지난 28일 리마에서 그의 사면에 반대하는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사면은 페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성탄절 오전부터 수도 리마는 사면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시민으로 가득찼다. 시위대는 ‘후지모리는 살인자이자 도둑’, ‘사면반대’ 등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후지모리가 입원중인 병원으로 행진했다.

그런데 페루의 정치권에는 지금도 후지모리의 자녀들이 남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딸 게이코(42)는 지난해 대선에서 유력 후보였고 아들 겐지(37) 역시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된다. 이번 후지모리 사면 역시 야당 대표인 게이코가 탄핵을 주도하자 쿠진스키 대통령이 생존을 위해 독재자의 자유를 맞바꿨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련기사 )

독재자의 사면에 반대하지만 그의 후계자를 지지하는 페루 국민들의 모순된 정서. 이는 “후지모리는 지지자에게 영웅, 반대파에게 악마”라는 영국 BBC 평가와 맞닿아있다.

기존 정치문법 탈피한 일본계 신인의 등장

후지모리는 갑자기 페루 정계에 등장했다. 1990년 4월 대선이 치러지기 불과 한 달 전 구식 정치를 비판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소속당도 설립 6개월 밖에 안된 신생정당 캄비오(개혁)90이었다. 출마 선언 당시 그의 지지율은 불과 1%. 그가 맞서야 할 1위 후보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고 2위는 경제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알바 카스트로였다. 그들에 비하면 후지모리의 인지도는 훨씬 낮았다. 페루국립농대의 교수로 총장을 역임했고 1980년대 후반에 잠시 국영TV 시사토크쇼를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페루 사회에서 차별대상이었던 일본계 출신인 것도 약점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모두를 꺾고 대통령이 됐다. 비(非)정치인, 비 페루인이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당시 페루는 전직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의 경제정책 실패로 연 7,000% 이상의 심각한 인플레가 이어지는 등 위기를 겪고 있었다. 더욱이 가르시아의 비리 의혹까지 제기되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산골 출신의 자수성가한 후지모리는 소탈한 모습으로 트랙터를 타고 농촌을 돌며 빈곤층의 생존권 보장을 공약해 페루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력후보였던 바르가스 요사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화려한 홍보를 하는 등 부자의 대변인처럼 보인 것과 대조를 이뤘다. 여기에 후지모리가 인기를 얻자 주로 백인들이던 바르가스 요사의 지지자들이 ‘더러운 동양인 물러가라’ 등의 구호로 인종차별적 대응을 하는 바람에 일본계는 물론 토착 인디오등 소수민족들의 결집을 이끌어 냈다.

1993년 한국을 방문한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이 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테러와 경제몰락이라는 두 가지 악조건에서 페루를 구한 대통령”

새롭게 출범한 후지모리 정부는 두 가지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무너진 페루 경제를 재건하는 것, 경제위기로 등장한 반정부 게릴라들의 소탕이었다. 그는 두 과제를 모두 잘 해결했다고 평가 받는다.

후지모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권 초반부터 강한 개혁을 추진했다. 전임 대통령의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낮아진 휘발유 및 생필품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부유층의 재산세를 인상했고 부패한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일본계라는 점을 활용해 일본 정부에서 거액의 융자도 받았다. 부지런한 대책 덕분에 취임 1년 뒤 인플레이션이 139%로 떨어졌다. 임기 초반 마이너스였던 경제성장률은 임기 중반 12%까지 치솟았다.

더불어 주요 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사회 취약계층 지원을 시작했다. 백인 정복자들에 밀려 산골에서 빈곤한 삶을 이어가던 토착 인디오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대통령시절 해발 4,000㎞가 넘는 안데스 오지를 방문해 태양열판을 직접 설치하고, 홍수로 고립된 마을에서 한 여인이 산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헬기로 병원 후송한 일화 등은 유명하다.

1996년 페루주재 일본대사관에서 인질극을 벌인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 방탄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한 후지모리 전 대통령. 유튜브 캡쳐.

1996년 반정부게릴라들이 페루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벌인 인질극을 해결한 것도 큰 업적으로 꼽힌다. 당시 페루의 주요 반정부단체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의 무장게릴라 20여명이 대사관에서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잔치를 하던 외교관 등 72명을 인질로 붙잡고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인질극은 126일간 지속됐다. 후지모리 정부는 협상을 반복했지만 진전이 없자 군경특공대를 기습 투입해 40분만에 인질들을 구출하고 게릴라들을 전원 사살했다. 당시 후지모리는 직접 방탄복을 입고 현장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후지모리의 임기 중 MRTA와 센데로루미노소(빛나는 길)라는 두 개의 주요 게릴라단체가 소탕됐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빈곤과 차별을 탈피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목적을 위해 남녀노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일삼아 페루 국민들에게 위협이었다. 그 결과 1980년대 센데로루미노소가 활동을 시작한 후 10여년간 약 7만명의 국민이 희생됐다. ‘테러와 전쟁’을 내걸고 지속 소탕작전을 벌인 후지모리 정부가 인기를 얻은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권유지를 위해 모든 헌법기관을 탄압한 독재자”

업적만큼 독재도 강렬했다. 시작은 재임 3년에 접어든 1992년 4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킨 긴급조치다. 개혁이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그의 조치에 일일이 반대하는 여소야대 국회를 정리한 것이었다. 후지모리는 의회와 사법부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하며 정적을 제거했다. 이듬해 12월에 연임을 보장하는 새 헌법을 제정했다. 그때까지는 개혁이 성공을 거두던 터라 국민들이 그를 지지했다.

후지모리 정부는 거기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권 연장을 위해 인권탄압을 자행했다. 반대파를 납치하고 이들을 가둘 비밀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었다. 이후 후지모리의 3선 연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반대한 헌법재판관은 파면됐다. 국민들은 본격적인 문민독재의 시작으로 보고 반발했지만 3선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비선 실세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전 국가정보국 총수의 악행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0년 9월 페루 언론은 몬테시노스가 대선 당시 뇌물로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이후 그가 비밀암살단을 조직해 반대파를 사살하고 마약ㆍ무기밀매에 관여해 엄청난 재산을 치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지지기반이 없던 후지모리를 위해 모든 정치공작을 벌이는 대신 대통령을 조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셈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만찬에 참석했을 때 갑자기 전화를 해 “각하, 음식에 독이 들었다는 첩보가 급히 들어왔으니 먹지 마십시오”라고 거짓 정보를 전해 겁을 주고 점점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식이었다.

2005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칠레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시민들이 그의 복귀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후지모리는 이후 대통령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뒤 국제회의를 핑계로 출국해 일본에 망명했다. 페루 의회에 팩스로 사임서를 보내 ‘후지티보(도망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의회는 사임서를 무시하고 그를 해임했다.

이후 페루 사법부가 그를 단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지모리는 새로 당선된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다시 대선에 출마하겠다며 2005년 칠레를 통해 귀국을 시도했다. 이때 페루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됐고 수년간 재판을 거쳐 25년 형을 받았다.

하지만 후지모리가 페루 정치에 새긴 흔적은 여전히 정계를 좌우하고 있다. 그의 장녀 게이코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후지모리 정권 당시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와 증오가 만든 결과다. 민주화 이후 약 20년. 페루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와 어떤 평행을 이루고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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