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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공정사회와 능력주의

입력
2017.11.26 14: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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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따른 분배’ 주장의 숱한 허점

현재의 지위는 능력보다는 운의 결과

잠재력 계발 기회는 고르게 주어져야

사회정의, 곧 분배적 정의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사회적 재화를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옳은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다. 능력주의는 사회나 조직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여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옳다고 보며, 후자는 인간다운 삶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치가 무엇인지를 고려하여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대체로 사회의 기득권층은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응분 원칙에 부합한다는 근거로 전자를 옹호하고, 기존의 분배구조를 개혁하려는 이들은 처지가 절박한 사람들을 우선 지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근거로 후자를 옹호한다.

이렇게 보면 능력주의와 필요에 따른 분배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자는 능력에 대한 응분의 몫을 정의의 기준으로 보고, 후자는 응분과 상관없는 필요를 정의의 기준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는 필요에 따른 분배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 왜 그럴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능력주의의 현실적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일 현재의 분배 결과가 능력주의와 거리가 멀다면, 능력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왜곡된 분배 관행을 정당화하려는 기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질문으로도 능력주의의 허구성은 곧 바로 드러난다. 현재 주요 공직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그 직책에 걸맞은 최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예컨대 현직 국회의원들 중 그 지위에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있으며, 대기업의 총수나 경영자들 중 그 직책에 필요한 최상의 능력을 지닌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현재의 거부들 중 상당수는 부모에게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되었거나, 소유하고 있던 토지 가격이 갑자기 폭등해 졸부가 된 운 좋은 사람들이다. 그 누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를 자신의 능력만으로 획득했다고 뽐낼 수 있으며, 자신의 직무를 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능력주의가 정당화하려면 사람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부, 소득, 권력 및 지위가 능력이라는 유일한 기준에 의해 창출됐다는 사실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능력주의가 정당하기 위한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잠재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조건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유능하고 부유한 부모를 만난 행운아들은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지만, 무능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처럼 재능 계발에 필요한 원초적 기회가 불균등한 상황에서 사회적 재화들을 둘러싼 경쟁이 공정하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잠재능력을 충분히 계발하여 자기를 실현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의식주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잠재능력을 충분히 계발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탁월한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계발할 수 없는 불운한 아이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비효율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대다수 아이들의 잠재능력이 충분히 계발된 상태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면 정의와 효율성이 동시에 달성될 수 있다. 모두가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어 정의가 실현되고, 능력이 더 뛰어난 자들이 일을 맡아서 작업의 효율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사회를 공정하고 부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음서제나 부정청탁과 같은 불공정한 관행을 청산하고 오직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하며, 모든 아이들에게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는 질 높은 공교육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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