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냇 터너 (8.21)

입력
2017.08.21 04:40
0 0
흑인 노예 냇 터너가 1831년 8월 21일 유혈 봉기를 시작했다.
흑인 노예 냇 터너가 1831년 8월 21일 유혈 봉기를 시작했다.

1831년 8월 21일, 미국 사우스햄턴의 흑인 노예 냇 터너(Nat Turner, 1800~1831)가 봉기를 시작했다. 그의 꿈은 노예 해방이 아니라 흑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여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신의 계시라 여겼다.

터너는 노예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주인이 붙여준 성과 이름으로 역시 노예로 성장했다. 그는 영민해서 독학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신앙이 깊어 성경을 읽고 자주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22세에 농장에서 도망을 쳤다가 한 달여 뒤에 “성령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동료 노예들을 모아 예배를 이끌고 성경을 가르치며 자신을 ‘예언자’라 불렀다고 한다.

그 무렵 미국 남부의 면화 플랜테이션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격이었다. 면화는 유럽 의류 혁명을 선도하며 고가에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남부 농장주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겼다. 목화 송이에서 씨를 뽑는 조면기가 발명돼 생산량도 급증했다. 1860년대 미국의 면화 생산량은 약 23억파운드에 달했고, 총 수출의 3분의 2가 면화였다. 덩달아 노예 값도 치솟았다. 다만 노예들의 노동ㆍ삶의 여건은 극도로 악화해갔다.

성경을 독학하며 스스로를 신의 제자라 여긴 터너는 신이 약속한 복음의 미래가 자신의 것이라 여겼다. 1831년 4월 13일의 일식이 그에겐 계시였다. 태양을 가린 검은 점은 새 세상을 지배할 흑인의 손이었다.

노예와 자유노예 등 추종자 70여 명과 함께 그는 거사일 아침부터 마을의 백인 57명을 무차별 살해했다. 그는 자신들의 행위가 불씨가 돼서 남부의 모든 흑인들이 봉기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흑인들은 동조하지 않았고, 급조된 백인 민병대에 의해 봉기는 이틀 만에 진압됐다. 흑인 56명이 재판을 받고 19명이 사형당했고, 12명은 다른 주로 팔려갔다. 그와 별개로 민병대와 백인 폭도들은 마을 흑인 약 200명을 살해했다. 숲으로 도주한 터너는 약 2개월 간 숨어 지내다 10월 30일 체포돼 11월 5일 재판을 받고 11월 11일 교수형 당했다.

남부의 주들은 냇 터너 봉기 직후 노예 및 자유 흑인의 교육 및 집회를 제한하고 흑인들의 무기 소지 권리 등을 박탈했다. 흑인 교회에서도 백인 목사가 설교하도록 한 곳이 많았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