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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깬 中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디스토피아의 서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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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깬 中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디스토피아의 서막인가

입력
2015.05.0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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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서 배아 대부분 죽거나 다수 변이

체세포와 달리 결과 대물림돼

"인간배아 연구 잠정 중단하자"

전 세계 생명과학자 선언 잇따라

英 세 부모 아기 논란 계속

伊 의사는 머리이식수술 예고

내로라하는 전세계 생명과학자들이 잇따라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잠정 중단하자”며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고 있다. 생식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면 체세포와 달리 그 결과를 후대로 물려주게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권위 있는 과학잡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물론 일간지에도 같은 취지의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국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와 폴 버그 박사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과학계가 기술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 행동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유전자를 편집하기 전에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저명한 생화학자이자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회장인 루돌프 재니쉬도 타임 기고를 통해 이에 동참했다.

中 인간 배아 손 대다

모라토리엄 선언은 중국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 실험을 했다는 과학계에 떠도는 소문이 발단이 됐다. 논란의 핵심에는 일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로 불리는 크리스퍼 기술이 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특정 염기서열을 찾아내 해당 부위 유전자를 절단하는 효소로 인간ㆍ동식물 세포의 유전체 교정에 사용된다.

현존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 중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되는 크리스퍼의 등장으로 유전자공학은 진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동시에 남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경우가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중산대 황쥔주 박사팀의 연구다. 황 박사팀은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해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 실험을 한 논문을 온라인 과학잡지 프로테인&셀에 지난달 게재했다. 이들은 현지 불임클리닉에서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인간 배아를 얻은 뒤 지중해성빈혈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에 대한 편집을 시도했다.

황 박사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세상에 알려서 이런 방식으로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상적인 배아에 이 방법을 쓰려면 확률이 100%에 가까워야 한다”면서 “그래서 실험을 중단했다. 아직은 미숙한 상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배아가 죽거나 유전자를 바꾸지 못했으며 다수에서 변이가 생겼다.

생식세포의 유전자 조작을 인간의 존엄성과 안전 문제, 남용에 따른 부작용 등의 이유를 들어 암묵적으로 금기시해 온 학계에선 비판이 이어졌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국립보건원(NIH) 원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윤리적 의문을 제기하며 “미국은 절대로 배아 변형 연구를 위한 자금 모금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비영리조직인 유전학과 사회센터의 마시 다노브스키 소장은 “이 실험이 유전질환 때문이라 하더라도 배아 선별 등 다른 기술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식세포를 조작할 만한 의료적 필요성과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존 해리스 영국 맨체스터대 생명윤리학과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배아는 어차피 체외수정 과정에서 폐기되기 때문에 이 분야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토콘드리아 결함으로 7명의 아기를 잃은 샤론 버나디(오른쪽)와 유전병을 앓다가 지난해 결국 21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의 아들 애드워드.
미토콘드리아 결함으로 7명의 아기를 잃은 샤론 버나디(오른쪽)와 유전병을 앓다가 지난해 결국 21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의 아들 애드워드.

세 부모 아기의 미래는

영국에서 허용된 세 부모 체외 수정이 논란인 이유도 이 법안이 아기를 디자인하는 시대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다. 영국 하원은 2월 세계 최초로 부모 3명의 유전자를 결합해 아기를 낳는 이른바 ‘세부모 아기법’을 통과시켰다.

가디언에 따르면 세 부모 체외 수정은 미토콘드리아 결함이 있는 엄마의 난자에서 핵만 빼내, 핵을 제거한 다른 여성의 난자에 삽입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이상으로 인한 유전질환의 대물림을 막자는 취지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구조적 결함이 유전되면 아기는 대사질환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암 등 150개의 심각한 유전질환을 물려 받을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로 인한 질병은 모두 모계 유전이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는 영국에서 한 해 100명, 미국에선 1,000~4,000명에 달한다. 영국에서는 이 법으로 2,500명의 가임기 여성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에 따라 이르면 내년에 부모와 제3의 여성 이렇게 3명의 유전자를 지닌 아기가 탄생할 수도 있지만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장애나 질병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한편 사람들이 피부색 눈동자색 머리카락색 등을 선택해 아기를 낳는데 한 발짝 다가서게 되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세 부모 아기법 초안에 ‘미토콘드리아 기증자의 익명이 보장되며 기증자는 아이 양육에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법에 따라 누구나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를 알 권리와 충돌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반면 세부모 아기법 찬성론자들은 아기의 유전자의 99.8%는 부모에게서 물려 받고 나머지 0.2%만 미토콘드리아 엄마로부터 전달된다며 그 유전적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환자들을 위한 세부모 아기 연구의 중심지인 뉴캐슬대는 이미 아기의 ‘두 번째 엄마’가 되는 기증자에게 500파운드를 지불하고 있다.

영국 보건부 수석 의료담당 데임 샐리 데이비스 박사는 “미토콘드리아를 바꾸는 것은 고장 난 자동차 배터리를 교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세부모 아기법이 미토콘드리아 관련 질환을 앓는 여성과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고 이는 옳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머리이식수술을 계획하고 있는 세르지오 카나베로 의사. 유튜브 영상 캡처.
머리이식수술을 계획하고 있는 세르지오 카나베로 의사. 유튜브 영상 캡처.
첫 번째 머리이식수술을 받게 될 발레리 스피리도노프.
첫 번째 머리이식수술을 받게 될 발레리 스피리도노프.

머리이식수술은 천국이 될 수 있을까

머리이식수술은 유전자 편집이나 세부모 아기법 보다 대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생명윤리 이슈다. 이탈리아 신경외과의 세르지오 카나베로는 다음달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열리는 미국신경ㆍ정형외과의 연례학회에서 머리이식수술 계획을 발표한다. 카나베로는 이 수술을 ‘head anastomosis venture’(머리이식수술)의 앞 글자를 따 ‘HEAVEN’(천국)이라고 명명했다.

수술 과정은 이렇다. 뇌사 상태지만 몸은 건강한 신체 기증자와 환자의 머리를 아주 날카로운 칼로 자른다. 카나베로가 ‘마법의 물질’이라고 부르는 ‘폴리에틸렌 글리콜’을 이용해 잘린 두 척수를 잇는다. 환자의 머리와 기증자 몸이 하나로 이어져 붙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4주간 혼수상태로 둔다. 새 몸에 대한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강력한 면역억제제를 투여한다. 카나베로는 이 수술에 36시간과 750만파운드(128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비용은 주로 수술을 마치는데 필요한 의료진 150명의 인건비다.

일부 신체장애인 사이에서 이 수술은 곧 희망이다. 데일리메일은 러시아에서 컴퓨터과학자로 일하는 발레리 스피리도노프(30)가 이 수술을 첫 번째로 받을 예정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스피리도노프는 선천적으로 신경근육계 희귀 유전질환인 베르드니히-호프만병(척수성 근육위축병)을 앓고 있다.

스피리도노프는 “나는 지금 겨우 내 몸을 제어할 수 있고 매일, 매 순간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며 “수술이 위험성과 그 위험이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나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 병을 앓는 환자는 대개 평균 수명이 20년이다. 그는 내년에는 수술을 받게 되길 원한다. 그는 “가족도 첫 번째 수술 대상자가 되겠다는 내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카나베로 박사가 척수를 다시 연결하는 어려움을 단순화하고 있다”며 “순수한 판타지”라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카나베로의 모국인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프랑켄슈타인’으로 비유한다. 아더 카플란 뉴욕대 랭곤메디컬센터 박사는 카나베로를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성공 여부와 별개로 윤리적 논란도 뜨겁다. 미국의 생명윤리학자 페트리샤 스크립코는 “이식을 통해 사람을 살려낸다 해도 그가 누군지 정의하는 데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가디언에서 전했다. 그 사람이 머리이식을 한 환자인지 기증자인지, 만약 결혼을 해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또 누구의 아이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미국신경외과학회장인 헌트 배트저 박사는 CNN에 “나는 누구도 이런 수술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죽음보다 더 나쁜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아기를 출산하고 몸을 바꿔가며 불로장생하는 공상과학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이 코 앞에 닥쳤다. 어떤 기술이든 천국으로 쉽게 단정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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