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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비친 세상] 객관적 근거 있다면, 비방 아닌 소비자 불만

입력
2017.03.0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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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환불을 해주지 않는다면서 ‘악덕 병원’이라는 등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게 될까.

윤모(39)씨는 2015년 10월 서울 송파구 한 피부과에서 93만5,000원을 내고, 기미나 주근깨를 없애는 레이저토닝과 비타민 미백관리 등 총 25번의 시술을 받기로 계약했다. 이후 시술을 3차례 받았는데, 병원에 본인 것보다 절반 정도나 싼 49만원짜리 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윤씨는 병원 측에 시술 프로그램을 교체하고 차액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은 “약관에 환불을 해줄 수 없도록 돼 있다”며 거절했다.

윤씨는 곧바로 ‘피부과를 고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블로그를 만들고 병원을 비난하는 글을 무차별로 올렸다. ‘돈 되는 것만 권하는 상담실장’, ‘무조건 비싼 것만 강매’, ‘악덕 클리닉은 피하셔야 할 곳’, ‘동네 양XX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의사’ 등의 내용이었다. 피부과·성형외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불만을 털어놨다.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 신청도 해 1회 치료비와 위약금을 뺀 72만원을 환불 받으라는 결정도 받아냈다.

그래도 병원은 꿈쩍하지 않았다. ‘약관’을 이유로 계속 버티자 윤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불공정약관 심사청구)을 제기했고, 공정위는 약관 수정을 권고했다. 약관은 고쳤지만 병원은 여전히 “환불은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윤씨를 “허위의 글로 병원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법원은 윤씨의 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꼼꼼히 따졌다.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이흥주 판사는 5일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소비자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 당했다고 생각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다소 감정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글이 허위 사실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글을 쓴 동기가 다른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공공이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객관적인 근거만 있다면, 비방이 아닌 다른 고객들이 참고할 소비자 불만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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