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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도 했는데…" 강남 부촌 초교 위장전입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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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도 했는데…" 강남 부촌 초교 위장전입 몸살

입력
2015.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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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자녀와 인맥 쌓게 하려…"

도성초 학급당 37.5명 초과밀

단속 느슨하고 강제 전학 못시켜

주민등록법 사실상 사문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종 사회 단면

서울 도성초등학교.
서울 도성초등학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도성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자녀를 둔 A씨는 요즘 학교에 발을 끊었다. 지난달 초 학부모 모임에서 학부모들이 인사치레로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온 게 영 개운치 않은 때문이다. 사실 그는 ‘위장전입자’라서 그 때 답변을 못하고 얼버무렸다. A씨의 집은 도성초가 아닌 인근 도곡초 학군이다.

학교 측이 일제히 실거주 확인에 나선 뒤로는 전화가 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A씨는 주소를 옮겨 놓은 집에 부랴부랴 아이 방을 꾸며 놓는 법석을 떨기도 했다. 최근 위장전입 사실이 적발된 학생 2,3명이 교장 면담 후 전학을 갔다는 소식에도 A씨는 노심초사 하고 있다.

신학기를 맞아 강남 고급 아파트가 밀집된 학군 일대에 위장전입이 극성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ㆍ행정 당국의 느슨한 단속도 불법 행위에 한 몫하고 있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위장전입 전력이 임명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7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도성초는 3월말 현재 학급당 학생수가 37.5명으로 초과밀인 상황이다. 특히 지난달 입학한 1학년의 학급당 학생수는 39.5명에 달한다. 서울 전체 초등학교 평균 24명, 강남구 평균 25.6명과 비교해도 턱없이 많은 숫자다.

이 학교의 학생이 이처럼 많은 것은 ‘위장전입’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학교 인근은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초등학교 진학 연령대 학생수가 많아 도성초와 도곡초 배정 학군으로 나뉘는데, 학부모들이 자녀를 도성초에 보내기 위해 도성초 학군 내의 아파트나 오피스텔로 위장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성초와 직선거리로 불과 400m 떨어진 도곡초의 학급당 학생수는 24.1명이다.

학부모들이 불법행위인 위장전입을 하면서까지 도성초에 자녀를 보내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학부모 B씨는 “도곡초 가는 길에는 인도도 없이 차량만 지나가는 곳이 있어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며 안전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도성초 졸업생들이 중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카더라’식 소문도 ‘쏠림 현상’을 부추겼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어릴 때부터 ‘있는 집’ 자녀들끼리 인적 관계망을 쌓도록 하겠다는 부모들의 ‘욕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도성초 주변에는 매매가가 10억원 안팎인 아파트가 몰려 있지만 도곡초 주변에는 다세대주택과 상가 등이 밀집해 있다. 도곡초 학군에 거주하는 학부모 C씨는 “도성초 학부모 중에는 의사, 판검사, 변호사, 고위 공무원, 대기업 직원, 유학파 등 소위 ‘잘 나가는 부모’가 많다”며 “이런 환경을 무시할 수 없어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위해 주소지를 변경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엔 위장전입이 성행하지만 단속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주민등록법은 위장전입이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으로 여기고 있다. 교육당국은 초등학교 전ㆍ입학 업무는 학교장 소관이라며 ‘실거주 여부를 제대로 살펴보라’는 공문만 보내는 실정이다. 위장전입과 관련된 통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당국은 기존 세대에 추가 전입할 경우 세대주의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가 이뤄졌다면 적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교장이 실거주자가 아님을 확인하더라도 학생을 강제로 전학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점도 문제다. 강남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생이 현재 학교를 계속 다니겠다고 하면, 이사했다는 이유로 그 지역 학교로 강제 전학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번 입학이나 전학이 허용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 위장전입을 부추기는 요인인 셈이다.

김정한 도성초 교장도 “위장전입과 관련한 사안은 모두 종료됐다”며 “(위장전입이 확인돼) 전학을 가라고 할 수 있는 강제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학부모들의 도덕성, 윤리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위장전입을 하고서도 법적인 책임은 물론 도덕적 책임마저 지지 않는 상류층의 행태 때문에 이런 현상이 만연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후보자들은 모두 본인이나 아내가 위장 전입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했다.

심지어 주민등록법의 주무부처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황찬현 감사원장도 위장전입 전력이 있다. 현 정부에서 입각한 정홍원 전 국무총리, 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이성한 전 경찰청장 등도 위장전입 전력이 드러났지만 “사과한다”는 말로 자리에 올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없는 사회의 단면”이라고 꼬집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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