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궁지 몰린 北 “한국이 배후” 어깃장

알림

궁지 몰린 北 “한국이 배후” 어깃장

입력
2017.02.20 23:04
0 0

‘北이 암살 배후’ 좁혀 오자

“말레이ㆍ한국이 결탁” 거센 반발

강철 駐말레이 北 대사 긴급회견

“김정남 자연적 요인으로 숨져

경찰 조사 결과 믿을 수 없다”

말레이, 駐북한 대사 소환 등 대립각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20일 오후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스1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20일 오후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스1

20일 오후 2시30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촌 부킷 다만사라로 들어가는 초입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앞에서 강철 대사가 자청한 기자회견을 듣기 위해 취재진 200여명이 몰려든 까닭이다. 20여분의 회견이 끝나자 대사관 직원들은 “문을 닫겠다”며 일방적으로 한국기자들을 밖으로 밀어 냈다. “참을 수 없다” 등 외교적 언사에 어울리지 않은 거친 표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전날 북한 국적자 5명을 사실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배후로 지목하자 북측이 반발 수위를 급격히 끌어 올렸다. 이에 맞서 말레이시아 정부도 강 대사를 ‘초치(안으로 불러 들임)’하고 북한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등 김정남 피살을 둘러싼 양측 갈등이 ‘벼랑 끝 외교전’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강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 정부 조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히려 한국을 사건 배후로 지목하면서 “두 나라 정부가 결탁해 북한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처음에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실신한 북한 외교여권 소지자가 이송 도중 자연적 요인으로 숨졌다고 북한 대사관에 알려 왔다”며 “사건 후 7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인과 관련해 명백한 증거가 없고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 DNA를 확인한 뒤 시신을 인도하겠다는 말레이시아 측 방침 역시 “(사망자가 외교특권이 있는 만큼) 시신은 북한으로 인도돼야 한다”고 맞섰다. 앞서 강 대사는 17일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 앞에서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자가 외교관 여권을 가진 북한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사 및 영사관 직원의 신체 불가침 등 외교관 특권을 보장한 ‘비엔나 협약’에 근거해 조건 없는 인도를 재차 요구한 것이다. 이날도 사망자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다.

북측은 이번 사건을 한국과 말레시아 정부의 ‘정치적 결탁’ 사건으로 규정했다. 강 대사는 “(김정남 피살로) 유일하게 혜택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와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 보수정권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북한을 사건 배후로 지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알기도 전에 (한국 정부가) 북한 용의자를 지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사주를 받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이 김정남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선 “정말로 이 여성들에 의해 사망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진상은 두 용의자들이 밝힐 문제”라며 전면 부인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 대결을 불사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이날 오전 강 대사를 부른 사실을 공개하면서 “(김정남) 사망 사건이 말레이시아 땅에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 하에 발생했기 때문에 사인 규명 조사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책임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말레이시아는 정부 명예를 해치려는 어떠한 근거 없는 시도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강경한 입장도 내놨다.

말레이시아 측은 한술 더 떠 모하맛 니잔 모하맛 북한 주재 대사를 아예 본국으로 불러 들이는 강수를 뒀다. “(사건) 협의를 위해 쿠알라룸푸르로 소환했다”는 설명이지만 자국 대사 송환은 대사관 폐쇄에 다음 가는, 강도 높은 외교적 항의 표시라는 점에서 말레이시아 측의 강경한 대응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강 대사 기자회견 직후 나집 라작 총리까지 나서 “우리 경찰과 의사들은 매우 전문적이며 수사 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현지에서는 1973년 수교 이후 40여년 간 우호적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양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립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강 대사와 면담이 끝나기도 전에 북한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북한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끌어 올리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강철 북한 대사의 돌연한 기자회견을 수교국을 배려하지 않은 주권침해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며 “수사는 물론, 시신 인도 등 김정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북측 입장이 반영될 여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