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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내로남불’, 자기의식의 몰락

입력
2017.11.07 15: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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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힘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치명적 냉소주의만 무성히 자라

지식의 죽음으로 빈말만 난무해

시민단체와 국회에서 ‘경제정의’를 대변하던 어떤 장관 후보자의 재산축적 방식은 적잖게 실망스러웠다. 무차별적으로 도덕성을 따질 필요는 없겠으나, 자신이 전문가로서 주장했던 문제들에서 이중적 행동을 했으니 가볍지 않은 실수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너무나 상식적인 방식인데도 이를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명한 청와대의 태도는 끔찍했다. 타락하고 부패했던 지난 정부와 현 정부가 구별되는 점은 무엇보다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힘이다. 이 힘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내로남불’ 및 그것의 변형된 형태인 ‘내가 하면 정의, 남이 하면 불의’라는 냉소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이제까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기승을 부리던 배타적 진영논리가 치명적 냉소주의로 확대되고 있다. 물론 사람이 단일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마음은 애초에 이중적이다. ‘자신이 늦으면 교통 탓, 남이 늦으면 인격 탓’을 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도 확인된 일반적 행동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횡행하는 ‘내로남불’은 일반적 심리상태의 극단에 있기에 위험하다.

이 치명적 냉소주의는 인간의 자기의식이 몰락하는 한 징후이다. 그 시작은, 멀리 가지 않는다면, 이미 한두 세대 전에 파악된 지식인의 몰락일 것이다. 그것의 한 원인은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식의 생산과 유통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었던 게 배경이다. 과거처럼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일은 효과를 가지기 힘든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점점 특수화되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주장했던 보편적 지식인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영역에서 기술적 지식을 습득한 특수한 지식인들이나 보통사람에 의해 대체되었다. 따라서 ‘지식인의 죽음’ 자체는 크게 아쉬워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다음 두 문제가 있었다. 첫째, 보통 사람들이 기대고 호소할 건전한 상식이나 관행이 있느냐는 것이다. 부정적이다. 그 결과 ‘내로남불’이 해일처럼 사회를 덮치고 치명적 냉소주의가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박근혜의 뻔뻔한 거짓말도 끔찍하지만, 그 뻔뻔함을 극복해야 할 사회도 극단적 냉소주의에 시달리고 있고, 청와대까지 냉소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둘째, 전문가적 지식이라는 것이 점점 특수한 코드를 따르고 운영하는 기술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골고루 모든 영역에서 양식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이 붕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붕괴는 자기의식과 인간성에 근거했던 모든 주장들을 무너지게 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박탈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자기를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기의식 덕택에 이제까지 인간은 인공지능에 대해 우월함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입만 열면 빈말을 하는 인간이 어떻게 최소한 기능은 잘 하는 로봇에 대해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의식과 마음이 자기를 성찰하는 힘을 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들을 내세우지 않은 채 주어진 기능이라도 잘 하는 인공지능이 훨씬 소박할 뿐 아니라(최소한 거짓말과 빈말은 덜 할 것이니까), 유리할 것이다. 지금 인간주의에 호소하는 학자들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자기의식’을 내세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어떤 철학 이론도 이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자기의식이 근대 이후 보물이 된 것도 단순히 이성이나 인권 덕택은 아니었다. 모든 개인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실제로 정치·경제·교육·군사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공적인 영역에서 상식에 따라 행동한다는 전제는 무너지고, 전문가들은 오히려 자신의 기능영역에서 빈말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물론 각자에게 의식과 느낌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러나 각자에게만 그렇다면? 반면에 함께 사는 사회에선 쓰레기처럼 낭비되고 있다면?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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