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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보수 몰락은 진보마저 위태롭게 한다

입력
2018.05.07 10:4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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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사라지면 사회는 형평을 잃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부터 ‘보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2016년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보수는 정치권력은 물론 사회적 세력으로서 주류의 위상을 견지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의 국기문란에서 비롯한 보수 정권의 몰락은 권위주의 시대에 누적되었던 사회적 부조리와 부패구조의 실상을 드러내는 변곡점이었다. 과거의 법적·관행적 적폐의 주체들이 심판의 대상에 올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보수의 궤멸’은 현실로 나타났다.

진보 진영의 분열과 사회경제적 쟁점축에 천착하지 못했던 통찰 부족은 보수 세력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자민당을 연상할 정도로 보수 진영은 강고해 보였고, 진보 진영은 전략과 리더십의 부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로 국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보수의 공고한 진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누적됐던 한국사회의 구조는 총체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보수의 몰락은 권력 내부에서 상호 견제·감시하는 세력 부재와 무능한 진보의 중첩적 작용이 가져 온 결과였다. 보수 내부의 자기검열은 작동하지 않았다. 대척 세력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몰락을 결과한 형국이다. 권력은 감시받고 견제받을 때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대통령제의 국정운영의 원리가 견제와 균형인 이유이기도 하다.

‘완전한 비핵화’를 고리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의 종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공통분모를 도출하기 위한 복잡한 국제정치적 해법은 여전히 난해한 고차방정식이다. 그러나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반도의 냉전 종식과 동아시아의 신국제질서의 형성 가능성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핵 없는 한반도’는 냉전 지대의 영구적 소멸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비롯된 대세 전환은 국내정치적으로 극우적 안보이념을 자양분으로 삼고, 냉전과 반공주의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아 온 세력에게는 미증유의 도전임에 틀림없다.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지형의 변화가 사회 각 영역의 구체제 청산 동력으로 작용하면 진보 진영의 정치적 기반은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이는 보수의 침체 또는 동면(冬眠)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흐름을 후년의 총선, 차기 대선까지 이어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예측 불허의 복병과 조우할 수 있다. 정치는 불가측적인 변수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 친화적인 국내외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세력의 출현이 문 정권의 성공에 긴요하다는 역설을 간과하면 안 된다.

민심과 동떨어진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합리적 보수를 추동하거나 재건할 수 없다. 이는 균형감각을 갖춘 대안세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건강한 보수야당의 존재와 집권 세력 내부의 자율적 견제는 한반도에 다가오는 세계사적 변화에 대처하고 국내정치의 형평을 위해서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당의 행태와 인식은 보수 세력의 회생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촛불혁명 이후의 한국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대한 통찰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집권 세력으로서의 통렬한 반성 또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한국당 지도부가 세계사적인 거대한 흐름을 외면하고, 10~15%에 달하는 극우세력을 결집시켜 선거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선거공학에 입각해 있다면 지방선거 이후 ‘보수의 궤멸’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보수가 건강해야 진보도 강해진다. 보수의 재건은 반공 극우의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당의 시대를 거스르는 왜곡된 냉전주의는 진영을 넘어 한국정치와 사회에 또 하나의 재앙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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