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곤충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알림

곤충은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는가

입력
2015.11.13 20:00
0 0

곤충연대기

스콧 R. 쇼 지음, 양병찬 옮김

행성B 발행ㆍ332쪽ㆍ1만9,000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 하지만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착각인가. 미국 곤충학자 스콧 쇼(와이오밍대 교수)가 쓴 ‘곤충연대기’는 ‘자만도 유분수’라고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곤충”이고 인간은 그들의 영토에 들어온 신참 세입자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하다못해 현존하는 날개 달린 곤충 중 가장 오래된 생물로 간주되는 하루살이의 일종, 바에티스 마그누스만 봐도 존경의 염이 솟아야 옳다. 3억 3,000만년 전 석탄기에 등장해서 지금껏 살아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에 비해 인간의 문명은 고작 수 천년밖에 안 됐다.

저자는 진화를 곤충의 관점에서 재치있고 생동감 넘치게 들려준다. 지질 연대를 구분하고 생물종을 분류하는 전문용어가 줄줄이 이어지지만, 읽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 낯선 용어들이 불러일으키는 아득한 상상력은 그것을 타고 날아가는 시간여행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읽다 보면 웃음이 킥킥 터지기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도 있다. 모든 생물의 번성이 곤충의 진화와 연결돼 있음을 알려주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곤충이 결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수많은 연구 자료와 화석, 곤충 사진을 곁들여 풍성하게 지식을 전달한다. 음식으로 치면 영양 만점에 맛도 끝내주는 책이다. 덮고 나서도 입맛을 다실 만큼 맛있다.

하루살이의 일종인 바에티스 마그누스. 3억 3,000만년 전 지구에 등장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날개 달린 곤충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성B 제공
하루살이의 일종인 바에티스 마그누스. 3억 3,000만년 전 지구에 등장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날개 달린 곤충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행성B 제공

곤충이 지구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중대한 역할과 자리를 얕보는 건 어리석다. 곤충이 사라지면 인간도 끝장이기 때문이다. 곤충은 기생충, 공룡, 인간, 이끼, 꽃식물 등 많은 동식물들과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적으로 지내며 함께 진화해 왔다.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해서 이름을 붙여준 곤충은 거의 100만 종. 포유류 양서류 어류 조류 등을 합친 전체 척추동물의 2배나 된다. 이것도 빙산의 일각인 것이, 아직 이름이 없는 곤충까지 더하면 어립잡아 1,000만종 이상 될 거라고 한다. 곤충의 낙원은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없는 극지방, 사막, 물속, 열대우림 등에도 있다. 4억년 동안 이 지구에서 살아온 진짜 주인으로서.

지구에는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많은 곤충이 살게 됐을까. 그들은 어떻게 육상생태계의 왕자가 됐을까. 저자는 수억년 지구 역사와 맞물린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암석, 숲 곤충의 몸 등에 새겨진 실마리를 찾아 연구를 거듭해온 과학의 노정과, 그 길에서 알아낸 사실과 깨달음을 풍성하게 펼쳐 보인다.

남미의 정글을 누비며 곤충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는 이 책 마지막 장에서 우주로 시선을돌린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다는 데 천문학자들은 전부 동의한다. 아마존 밀림에서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저자는 그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체를 생각한다. 우주의 곤충왕국을 상상하며, 우주선이 행성 탐사를 갈 때 곤충 채집망을 가져가라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책을 마무리했다.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저자는 ‘곤충 우주 가설’을 추신으로 붙였다. 다른 행성에도 곤충이 사는지 알아보려면, 외계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가벼운 농담과 함께 꺼낸 말이긴 하지만, 진지한 질문이다. 북두칠성은 꼬리가 길다란 말벌을 닮았고 용 자리는 노래기, 황소자리는 장수하늘소, 쌍둥이자리는 산누에나방의 눈꼴무늬를 닮았다고, 밤하늘 별자리 생김새도 곤충과 비교하는 못 말리는 곤충학자다. 그의 애교 섞인, 그러나 심각한 제안에 마음이 즐거워진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