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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국치일 아침에

입력
2016.08.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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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누나.” 이 시는 망국 직후에 음독자살한 매천 황현의 절명시 한 구절이다. 자결에 앞서 남긴 유서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마땅히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단지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나라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519년간이나 지속한 조선이 망했다. ‘경술국치’, ‘국치일(國恥日)’이라 부른다. 독립운동가들은 국치를 곱씹으며 역사의식을 승화시켰다. 임시정부가 3ㆍ1절 개천절 등과 함께 이날을 기념했던 데서 국권 회복에 절치부심하던 독립운동가들의 의지가 읽힌다. 국치 때에, 나라를 판 대가로 작위나 은사금을 받은 너절한 위인들은 보이지만, 매천같이 순명(殉名)한 지사는 몇 되지 않았다. 이게 경술국치 때 나라 꼴이었다.

국치일을 맞아 나라가 왜 망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국호까지 바꾸고 자강독립을 꾀했지만 왜 어육이 되고 말았는가. 흔히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세계정세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문호개방과 부국강병을 이룬 일제가 서구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편승하여 무신(無信)ㆍ무력ㆍ겁박으로 조선을 강점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망국의 원인을 거기에서만 찾는다면 그건 무책임한 진단이요 책임전가다.

이 대목에서 지도자 책임론이 거론되어야 한다. 최근 고종(高宗)의 개명 군주적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고종은 망국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일전쟁에서 노일전쟁 사이에 한반도는 외세의 세력균형을 이루었고 이를 기회 삼아 독립협회 등 민권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이 일어났다. 지도자라면 자주화의 방향을 민력(民力)을 진작시켜 부국강병의 기초를 다지는 데서 찾아야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민중의 요구와 역량을 제대로 알렸다. 통치자는 그렇게 분출된 민주역량을 북돋워 자주국가의 기초를 닦아야 했다. 그러나 고종이 응답한 것은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권 강화였다. 민중의 민주적 자주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것은 민주적 역량을 토대로 전 민족적인 부국강병ㆍ독립자주의 길을 모색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그 결과 황제 일인만 흔들면 나라를 좌우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이걸 간파한 일제는 을사늑약과 강점조약에서 황실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미끼로 나라를 탈취해 갔다.

그런 군주 하에서는 이에 부응하는 관료 군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매국 관료 군은 민중의 역량을 경시하고 외세에 의존하려는 혼군(昏君) 하에서 형성되었다. 친미파에서 친일파로 변신한 이완용은 당시 일제에 의해 고립된 황제권을 허무는 마지막 주자였다. 영어를 잘 해 외교관으로 발탁, 미국에 다녀왔고 한때 독립협회 회장까지 지낸 그는 1905년 을사늑약 때 ‘황실의 안녕과 보호’라는 단서를 붙여 늑약을 성사시켰다. 그는 뒷배를 봐주는 일제와 주군을 동시에 만족시킬 줄 아는 ‘유능한’ 관료였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이완용을 내각총리대신으로 앉혀 황제권을 더 약화하고 고종 폐위와 정미7조약, 군대해산을 밀어붙였다. 대한제국 해체의 주역답게 이완용은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천황폐하’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했다. 민주적 역량 대신 황제권을 강화하려던 고종, 그는 ‘유능한 관료군’과 더불어 국치를 자초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민중의 의병운동은 이미 때를 놓쳤다.

106년째 맞는 국치일이다. 역사에 눈을 감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단다. 동북아의 정세가 한말을 연상케 한다는 우려가 크다. 자주의 상징인 전작권마저 외국에 헌납한 한국이 사드 정국 하에서 샌드위치처럼 되어 어쩌면 생존권을 부지하는 것조차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한국’에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지라고 강조하지만 공허한 교언영색이다. 100년 전을 교훈 삼는다면, 민중에 의한 민주적 역량 강화가 절감되는 ‘국치일’ 아침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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