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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비 내리는 오후의 그리움

입력
2016.07.0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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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연일 땅바닥을 두드리고 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이렇게 흠뻑 내리는 빗소리를 듣다 보면 슬며시 가슴이 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늘 장마철이라고 답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러나 철없이 굴던 시절과는 달리 마냥 들뜨거나 설렘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근래 들어서는 괜스레 저미는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지나간 기억을 더듬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큰 탓이다.

이맘때면 늘 떠오르는 누이가 있다. 대여섯 터울 위였던 그는 약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내던지고 강원도 산골짜기 자연에 귀의해 살아가다 10년 전 이유 모를 병으로 생을 멈췄다. 함께 영혼을 나누던 남편과 더불어 아직 어린 다섯 남매가 있었지만 누이는 진한 기억만 남기고 황망스럽게 떠나고 말았다. 어차피 가야 할 그 먼 길을 무에 그리 급히 가셨을까. 유독 비 내리는 날이면 누이가 그립다. 그는 다섯 아이를 이끌고 종종 나선 서울 나들이 때마다 내 집에 머물렀다. 진즉 조카로 삼았던 아이들은 십여 개의 홍콩 무협물 비디오를 보며 밤낮을 샐 만큼 TV를 붙들어 맸고, 누이와 나는 막걸리를 사 다 놓고 낮술을 즐기며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어 살아갈지 나름의 진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기자로서의 삶을 멈추고 지금의 길을 걷도록 가장 큰 격려를 해준 사람이 바로 누이이기도 했다. 창밖에 빗소리가 가득하면 그는 벽면 가득한 나의 LP 중 늘 ‘호세 펠리치아노’를 들려달라고 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자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방인으로 미국 주류 음악계의 한 축을 이룬 그의 애절한 목소리를 누이는 무척 좋아했다. 비 내리는 날 ‘Once there was love', 'Rain' 등을 다시 들을 때마다 다시 가슴이 축축하게 젖는다. 그렇게 몹시 누이가 그립다.

불과 얼마 전 나의 부주의한 처신으로 잃은 사람도 문득 그립다. 육신의 이별이 아닌 관계의 단절이고 믿음의 끝이었다. 남아주길 부탁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부했고, 정중한 충고까지 아프게 던져주었다. 어렵게 새로운 길을 정하고 인터넷 창에 떠돌던 나의 활동들에 힘을 얻었다며 도움을 청했던 사람이었다. 커다란 신뢰와 기대감을 품고 찾아온 그를 나는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다. 언제나 분주한 일상이니 이해해 달라는 곤궁한 변명을 댔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매주 한번씩 앉아있던 빈자리의 여운만 진하게 남겨놓은 채 3개월 만에 바람처럼 떠나갔다. 나의 사려 깊지 못한 처신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돌이켜 살펴보니 이런 일들이 여럿 있었다. 모든 사람과의 인연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나름의 개똥철학이었지만, 밀려드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소신으로 벌인 일들이 지나치게 많기도 했다. 관계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싶었으나 스스로 허세만 가득했던 것이 아닌지. 무엇보다 그렇게 잃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아프게 가슴을 누른다. 그렇게 떠난 이들이 몹시 그립다.

사진보다는 사람을 위한 길을 찾는다며 호들갑을 떤 내 꼴이 남세스럽다.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공부’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이런 상념들이 고개를 크게 든다. 끼니를 채우듯 사람의 머릿수만 늘려온 것은 아닌지 지난 걸음을 들추고 다시 살펴본다. 어느새 시간이 세월이 되고 추억이 쌓여가는 지금, 떠난 이들의 빈자리가 유난히 커 보인다. 볼수록 아프고 후회되지만 이 거센 빗소리가 그치기 전에 부서지는 가슴을 추스르고 싶다. 제대로 이룰 수 있는 만큼의 노릇을 찾아 다시 그리움이 기쁨인 날들이 되길 가슴 깊이 소망해본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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