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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3철’ 배제했던 초심 잊었나

입력
2017.09.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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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통합ㆍ탕평 인사 호평

점차 ‘내 편’엔 솜방망이 잣대

인연ㆍ배경 인사는 개혁의 걸림돌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ㆍ탕평 인사를 부르짖지 않은 후보는 없었다. 막상 대통령이 되면 한결같이 선거 논공행상 중심의 인사를 했다. 청와대와 정부, 공공기관 고위직은 권력의 전리품이었다.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성시경(성균관대ㆍ고시ㆍ경기고)’ ‘문고리 3인방’이란 말 그대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달랐다. 취임 직후 계파와 지역, 노선을 뛰어넘는 탕평ㆍ통합 인사를 선보였다. 개국공신이 자리 욕심을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권 창출의 산파역이었던 이른바 ‘3철’ 중 현역 의원(전해철)을 제외한 양정철 전 비서관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현 정부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히고 해외로 떠났다. 친문 호위무사로 통했던 최재성ㆍ정청래 전 의원도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참신한 인사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비문계 임종석 전 의원을 비서실장, 안철수 후보의 ‘멘토’였던 장하성 교수를 정책실장, 안희정계 박수현 전 의원을 대변인으로 각각 임명했다.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에 일면식도 없는 관료를 기용한 것은 새 정부 인사의 백미였다. 역대 청와대는 홍인길, 최도술, 김백준, 이재만 등 예외 없이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을 이 자리에 앉혔다. 참여정부 시절 정상문 총무비서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마고우였다. 이들은 모두 각종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됐다. 인사수석에 여성을 앉힌 것도 시스템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받아들여졌다.

장관급 인사에선 숨은 인재를 발탁하는 실용 인사가 돋보였다. 문 대통령 스스로 “개인적 인연은 없다”고 밝힌 관료 출신을 경제부총리에, 비외무고시 출신 여성을 외교부 장관에, 박근혜 정부 상징인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출신을 국무조정실장에 각각 임명했다. 국민은 믿을 수 있는 ‘내 사람’이 아니더라도 능력과 소신을 갖춘 인재라면 뽑아 쓰겠다는 문 대통령의 열린 생각에 감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영논리가 끼어들며 ‘내 편’에 대한 검증이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비롯해 낙마한 고위직 5명에게 들이댄 검증 잣대는 솜방망이였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거나 문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과거 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다. 자질 논란에 휩싸인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저급한 성 담론으로 물의를 빚은 탁현민 선임행정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를 떠받치는 두 세력은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전통 야당과 운동권이다. 이들은 민주화 투쟁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인지, 자기가 속한 집단만이 정의롭다는 생각도 강하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변하는 한국 사회의 복잡다기한 현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국 철학자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자신의 우월함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할수록 자기가 지지하는 대의(大義)가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쉽다”고 했다.

청와대는 인사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협소한 인재풀’을 탓한다.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 중에서 찾자니 마땅한 사람이 드물고, 그러니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내 편’과 ‘기존 엘리트’라는 협소한 충원 구조에서는 인사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는 IT 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 인재를 찾아내고 확보해 인재풀을 넓혀야 한다. 그게 정권의 실력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4개월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나 인사만큼은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실력이 아닌 인연을 중시하는 인사는 개혁의 걸림돌일뿐더러 지지층을 이탈시켜 권력 기반의 약화로 이어진다. 인재 등용은 대통령의 선호나 판단이 아니라 검증 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 ‘3철’을 배제했던 초심으로 되돌아가기 바란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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