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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성장이라는 담론 근원부터 파헤치기 시도

입력
2015.08.2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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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2013)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2013)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쨌든 첫 출발은 사회과학책을 내보는 것이었다. 이전 출판사에서 주로 내던 책이 생태와 환경 그리고 국내 르포였던 터라, 큰 고민 없이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하여 고른 ‘발전’과 정면 대결하는 책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발전’이니 ‘성장’이니 하는 담론에 심정적 거부감이 아니라 정확하고 철저한 논박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책으로. 마침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한국, 아니 세계 경제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흐트러졌다. 이제는 작정하고 근원부터 탐구하고 모색해도 될 듯하다는 기대 섞인 희망도 있었다. 그 출발점으로 이 책은 썩 괜찮았다.

철학·경제학·인류학까지 망라해 종횡으로 넘나드는 저자(질베르 리스트)의 사유와 문장은 진정 경이로웠다.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제3세계 모두에 정당한 비판의 날을 겨누는 지적 성실함 또한 좋았다. 생소한 기구나 선언들도 종종 등장했지만,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기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만만찮은 대목이 많았다. 이런 책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보면서 서로의 고민과 지식을 모으면 더 잘 보이고 더 멀리 보이는 법.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독자들과 네 차례에 걸쳐 그냥(!) 우리 식대로 읽었다. 새롭게 알고 느낀 점들을 편하게 풀어보기로 했다. 4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여러 나이대의 독자들 네댓 명이 모여서 대학 때 NL, PD 논쟁에 대한 회고부터 한국 역대 정권의 친외세, 반민중적 정책과 행태 등에 대해 조금은 거칠되 뜨겁게 얘기했다. 멤버 중엔 국제원조에 관심 많은 청년, 베트남 역사에 밝은 여성도 있었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개발 발전에 좀 더 우호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고, 제3세계를 고려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조금은 저자와 거리를 유지한 채로.

저자는 출판사의 한국어판 서문 요청에 보름 이상을 꼬박 한국 관련 자료들을 찾아 공부했다. 한국 역시 다른 서구 제국주의, 사회주의,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발전신앙’에 사로잡혀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하면서도,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는 대목에서 저자의 성실함, 지적 겸손함이 오롯이 느껴졌다. 원래 저자의 다른 책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도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문학, 특히 산문들을 계속해서 내다보니 시기를 미루고 놓치고 했다. 해를 넘기지 않고 꼭 내려 한다. 해제를 쓰신 하승우 선생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초면에 대뜸 해제를 청했고, 두말없이 응해주셨다. 아주 요령 있게 책을 정리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얹어주셨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다른 유쾌하고 재밌는 일(‘땡땡책협동조합’)에 연루됐으니, 참 소득 많은 인연이다.

글쎄, 봄날의책이 돌고 돌아 다시 출발점(사회과학)으로 갈지, 아니면 산문 중심의 지금이 계속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막 열세 번째 책 마감이 끝났다. 그래서 좋다.

봄날의책 박지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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