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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 가까이에서 믿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

입력
2017.12.20 14: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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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가을 오후, 캠퍼스에서 어린이집 선생님과 산책을 나온 서너 살 먹은 아이들과 마주쳤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20여 년 전의 당황스럽던 기억이 스쳐갔다. 금요일 귀가 길에 아이를 돌봐주던 도우미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월요일부터 다른 집으로 가기로 했다고, 너무나 미안하여 미리 말을 할 수 없었노라고.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느라 주말 내내 혼비백산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 해도 집 가까이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1997년과 비교해 어린이집 수는 약 2.67배로 늘어나 2017년 8월 현재 전국의 어린이집은 4만 1,000여개이며 충원율도 전국 평균 82.1%(2016년 12월 기준)여서 수치로는 어린이집이 충분하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여전히 ‘집 가까운 거리에서,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의 확충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여성가족재단, 2017).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보육에 대한 국가책임이 강화되었음에도 공공성의 척도인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이 평균 11.2%에 불과해 민간 어린이집과 국공립 어린이집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요구하는 데서 비롯했다 하겠다.

최근 전국 지자체 중 서울시의 국공립 확산 모델은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시작한 국공립 1,000개소 확충사업에 이어, 2015년부터 18년까지 1,000개소를 추가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올 연말까지 서울시 전체 어린이집 6,262개소 중 약 27%에 해당하는 1,719개소를 국공립으로 확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진행과정에서 국공립 어린이집의 신축 이외에도 기존 민간 어린이집의 국공립 전환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병행되고 있다. 이로써 2012년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걸어서 평균 25분 거리에 있었다면 현재는 9분 거리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2020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33%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지난 5년 간의 가시적 결과는 단체장의 의지와 함께 재정의 확보, 실행목표에 따른 추진과정, 그리고 보육현장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현재 서울시의 국공립 확충 모델은 현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인 보육의 공공성 확보 40% 달성안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번져갈 전망이다. 각 지자체에서 서울시 모델을 적용할 때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유의점을 꼽아본다.

첫째, 지자체의 환경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는 밀집된 인구와 대도시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읍면동을 포함하고 있는 지방 광역 지자체의 경우, 영유아 수가 급감하고 있고 주거 분포가 분산되어 있어 기존의 국공립 어린이집의 충원율조차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국공립 확충 정책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기보다 도시형과 농어촌형으로 구분돼 각 지자체의 특성과 수요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민간 어린이집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실질적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도 90%정도를 밑도는 현실이므로 신축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집의 공적기능을 확장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미 민간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을 무상임대 방식으로 국공립화하거나, 국공립으로 전환한 운영자에게 운영권을 인정해주는 등 민관협력을 통해 부모의 어린이집 이용 만족도를 높이는 상생방안들이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 외에도 공공형 어린이집의 확대, 민간어린이집 이용 시 부담하는 부모부담금 지원 등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셋째,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더불어 인적, 물리적 자원의 질 관리에 필요한 지원체제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원 서비스는 국공립 어린이집 이외에도 모든 어린이집에 제공되어 보육현장이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머지않아 태어날 손자가 어린이집에 입소할 때쯤에는 전국 어디서든 ‘집 가까이에서 믿고 보낼 수 있는 어린이집’을 바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혜영 창원대 가족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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