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한전, 전기요금 누진제로 부당 이득... 상당 부분 외국자본 배불려”

입력
2016.08.28 14:00
0 0
곽상언 변호사는 현 전기요금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점기업이 아무런 감시 없이 멋대로 요금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곽상언 변호사는 현 전기요금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점기업이 아무런 감시 없이 멋대로 요금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사상 최고라고 할 만큼 길고 뜨거웠던 더위가 거짓말처럼 물러났지만, 여전히 열불을 식히기 힘든 가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월말이 되면서 올 여름 사용한 각종 냉방기기 요금 고지서가 속속 각 가정으로 날아들고 있는데, 예상을 훌쩍 넘는 전기요금 때문이다. 2012년 여름, 실명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눈병 때문에 집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든 아내의 푸념을 들으며,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지만, 40년 넘게 유지돼 온 이 복잡하고 공고한 제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곽상언(45) 변호사. 그는 이후 4년간 집요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결국 올 여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가정용 전기요금제도 개편 약속하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음 달 관련 집단소송의 첫 판결선고를 앞두고 최종 준비에 바쁜 곽 변호사를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하다.

-가정용 전기요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2012년 여기저기 많이 아팠다. 두 달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여름에 집에 누워 있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아이가 셋이나 되니, 한여름 에어컨을 많이 틀었을 거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건강이 회복되면 전기요금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한전의 홈페이지부터 살펴 봤고 전력 관련 각종 자료를 검토했다. 자료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법원에 제출할 소장을 작성하면서 한전이 공개한 자료만을 근거로 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2년가량 준비한 끝에 2014년 8월 한전이 가정용 전기로 거둬들인 부당이득을 반환해달라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 소송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당신 말이 사실이냐. 둘째, 사실인들 이길 수 있겠느냐. 셋째, 이기면 한전이 파산해 결국 우리나라에 피해가 오는 거 아니냐.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첫째, 한전이 발표한 자료만으로 찾아낸 것이니 사실이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둘째, 현실적으로 이길지 장담할 수 없지만, 법률적으로는 승소할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한전이 망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전은 강남 사옥 하나만 팔아도 10조원을 받는 세계 1위 전력회사니 쉽게 망하지는 않을 거다. 설령 망한다 해도 그 동안 위법하게 징수한 부당한 이득은 국민에게 반환해야 한다.”

-부당이득 규모를 정하기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부당이익이 성립하려면 법원이 인정할 적정 이익부터 구해야 할 텐데. 어떻게 했나.

“적정이익을 시장에서 구할 필요는 없다. 법률적으로 부당이득은 ‘법률상 원인 없이 취한 이득’이다. 법률상 원인이 없으면, 재산적 이익을 얻은 자는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 그러니까 한전의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 규정이 위법해서 무효인지를 살피면 된다. 그게 무효가 되면 무효인 약관조항에 따라 지금까지 징수한 전기요금은 반환해줘야 하는 거다. 최근 언론보도가 많이 이뤄져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듯이, 한전은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갖고 있고 오직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위법한 누진제 요금 규정을 두고 있다. 한전이 청구하는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의 합산액으로 구성된다.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 모두 6단계로 정해져 있다. 1단계를 제외한 2단계부터는 누진제 요금을 적용하는 건데, 이런 누진제 요금규정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면 1단계 이상으로 납부한 전기요금을 부당이득으로 산정할 수 있다. 핵심은 누진제 요금 규정이 한전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전기소비자인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누진제 요금 규정이 한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위법한 것이고,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적법한 것이다.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는 자명하다.”

-한전의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가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고 소송 의뢰자들의 사용 내용이 다 다를 텐데, 과연 이들의 부당이득을 일일이 계산할 수 있는가.

“깊이 고민하다 보니, 부당이득액을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수학과 씨름하느라 힘들었지만, 정확한 공식을 도출한 것을 확인한 후 희열은 정말 짜릿했다. 소송과정에서 이 계산공식과 계산결과가 맞는지 한전에 의견제시를 요구했는데,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계산공식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 법원이 타당성을 검증해 줄 것으로 믿는다.”

그가 소장을 뒤져 보여준 문제의 공식은 시그마가 여러 개 붙어있어, 수학에 젬병인 기자에게는 마치 달나라로 우주선을 날려 보낼 때 필요한 공식처럼 보였다.

곽상언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하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곽상언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하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점은 뭔가.

“여름 겨울 뿐 아니라 일 년 내내 부당하게 많은 전기요금을 걷어가고 있는데, 대부분 이용자는 ‘평소엔 조금 나오는데 여름ㆍ겨울에 많이 나온다’고 말한다. 늘 당하고 사니까 무감각해진 거다.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전기 판매량의 13.5%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주택용 소비량(33%)의 2분의 1도 안되는 정도다. 굉장히 아끼고 있는 거다. 그럼에도 지난 40년간 전기 사용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을 받았다. 우리 국민의 전기 절약 정신은 거의 신앙의 수준이다. 1974년 누진제를 도입했다는 건 그 이전에는 그런 요금체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제 강점기에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누구도 그게 잘못됐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었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과소비를 했다며 자책을 했지, 요금체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파고들면서 처음에 가장 놀란 점은 전기요금을 독점기업인 한전이 국민의 동의 없이 맘대로 정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의 최종 승인권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지만 여전히 전기소비자인 국민의 동의를 전혀 받지 않는다. 국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법률이 아니라서 국회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국가가 독점기업인 공사를 설립하고 자의적 요금규정을 통해 마음대로 국민으로부터 돈을 가져가고 있다. 이번 기회에 바로잡지 않으면, 정부는 얼마든지 우회적인 통로를 만들어 국민의 재산을 가져갈 것이다. 100번 양보해 국가가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국민의 재산을 가져가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한전의 체제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한전은 한국전력공사법에 따라서 설립됐고 전기사업법에 따라서 운용되지만, 실제 주인은 국가가 아니다. 1989년 상장한 후 49%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또 한전 지분의 30% 이상은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공시자료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통화청과 씨티은행 등이 주요 주주로 되어있다. 한전 이익의 많은 부분이 외국자본에 배당금 등의 형태로 유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전은 올 상반기 6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정부는 왜 이런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나.

“아마 대통령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주택용 전기요금의 본질적 문제점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전기 공급이 부족한데, 전기요금을 낮추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전기요금이 생산원가에 못 미친다.’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누진제 요금이 필요하다.’는 한전의 오래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모두 거짓이지만 우리가 그 동안 몰랐던 것뿐이다. 한전은 1단계 전력량 요금(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의 합산액)과 6단계 전력량 요금의 배율을 누진율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게 11.7배라고 한다. 하지만 기본요금을 기준으로 하면 누진율은 30배가 넘어버린다. 실제로 누진율이 없는 1단계 요금과 최고단계인 6단계 요금을 계산하면 최소 40배 이상으로 폭증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발견한 건데 2012년 8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1년 남짓 동안 한전은 3차례나 가정용 전기요금을 몰래 인상한다. 그런데 요금 인상 안내문을 보면, 누진율 11.7배는 유지하지만, ㎾h당 기본요금은 몇 십원씩, 전력량요금은 2, 3원 올리고 있다. 감독당국이 이걸 보면 ‘정말 불가피해 조금 인상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엄청난 누진율을 고려하고, 1단계 이하로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는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인상효과가 숨겨져 있다. 이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올여름 기록적 더위로 소송 참여 인원이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7월 하순까지만 해도 1,000명 미만이었다. 2년간 모은 수가 그 정도였다. 처음에는 주변 지인 20명을 설득해서 시작했고, 2014년 8월 처음 언론에 보도된 뒤 700여명이 더 참여했다. 그 외에는 한두 명씩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8월 들어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벌써 1만8,200세대를 넘었고 계속 늘고 있다. 소송비용은 1인당 1만5,000원이다.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소멸시효가 10년이다. 하지만 소송의 편의성을 고려하고 참여자를 늘리기 위해 일단 1년 4개월 치만 청구했다.”

-승소하면 소송에 참여한 사람은 대략 얼마씩 부당요금을 반환받을 수 있나.

“우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750명의 1년 4개월 치 반환청구 금액이 평균 65만원 정도다. 물론 1단계인 100㎾ 미만을 계속 써온 사람은 반환받을 수 있는 돈이 전혀 없게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소송인은 750명 중 단 1명이었다. 혼자 사는데 집에는 밤 늦게 들어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1년 4개월간 적게는 6,000원에서 많게는 400만원까지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10년치를 모두 청구한다면 한 가정당 대략 평균 500만원 가량 돌려받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부인과 함께 영화 ‘변호인’ 본 후 본인의 SNS에 “아내가 옆에서 서럽게 운다. 나도 누군가의 변호인이 돼야겠다”고 소감을 쓴 적이 있다. 앞으로 어떤 변호인이 되고 싶나.

“누진제 전기요금 반환 소송은 모든 국민을 위한 소송이다. 많은 국민들이 공감해 주셔서 변호사로서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1심 판결로 큰 의미가 있을 거다. 정상적인 법원의 정상적인 판결을 보고 싶다. 이게 아마 현 정부가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40년간 적폐 중 이만한 적폐가 어디 있겠나.”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곽상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졸업(경제학사)

-뉴욕대학교 로스쿨 졸업(법학석사)

-서울대 법과대학원 졸업(법학 석사)

-43회 사법시험 합격, 33기 사법연수원 수료

- 변호사시험 등 국가고시 출제위원

-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현 법무법인 인강 대표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