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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리틀 잉글랜드’와 ‘별로 위대하지 않은’대영제국

입력
2016.07.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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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를 둔 영국-네덜란드계로서 어쩔 수 없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게 된다. 유럽통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국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마치 끔찍한 사고로 사지 중 하나를 잃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모두가 영국의 EU 탈퇴를 못마땅하게 여기진 않는다. 반 EU, 반 무슬림 선동가인 헤이르트 빌더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는 트위터에 “영국인들 만세! 이제 우리 차례.”라고 올렸다. 이런 정서는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의 미래에 미칠 영향보다 더욱 걱정스럽고 더욱 불길하다. 파괴 충동은 전염되기 쉽다.

영국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뒤바뀌었다. 200년 이상 영국은 (인도인들은 시각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대부분 유럽인에겐) 자유와 관용의 이상과도 같은 나라였다. 친영파들은 반자유주의적 정권을 피해 대륙에서 온 망명자들에게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점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영국을 찬양했다. 영국은 유대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총리가 될 수 있는 나라였다. 또 1940년 사실상 유일하게 히틀러에게 맞선 나라였다.

헝가리 출신 작가 아서 쾨슬러는 1940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그는 유럽의 정치적 재앙을 모두 알고 있었고 스페인 파시스트들에게 처형당할 뻔했다. 그는 자신을 받아준 나라를 가리켜 “전체주의 시대에 내상을 입은 노병에게 다보스(스위스의 휴양지이자 요양지) 같은 곳”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태어난 우리 세대는 진실에 바탕을 둔 신화를 들으며 자랐다. 이런 신화는 만화책과 할리우드 영화가 확산시켰다. 영국 전투기 스핏파이어가 런던 주변에서 독일 전투기 메서슈미트와 싸우는 신화, 윈스턴 처칠의 성난 저항과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노르망디 해안으로 행진하는 신화 같은 것 말이다.

자유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영국의 이미지는 1960년대 청년문화가 더욱 확산시켰다. 스핏파이어 조종사들이 상징하던 혈기 왕성한 자유는 비틀스, 롤링 스톤스, 킹크스 같은 록 밴드들이 대체했다. 이들의 음악은 신선한 공기가 돌풍을 일으키듯 유럽을 넘어 미국을 휩쓸었다. 어머니가 영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천진난만하고 어울리지 않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영국이 산업적으로 쇠락하고 국제적 영향력은 줄어들며 축구 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영국의 어떤 것들은 내게 늘 최고로 남아 있다.

영국 투표자들의 52%가 ‘탈퇴’를 지지한 데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다. 영국의 산업이 쇠퇴하면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감정이 상한 데는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파산한 광산 마을과 녹슨 항구 도시, 쇠락한 공장 밀집 지역에 사는 나이 든 노동자 계층을 좌파도 우파도 챙기지 않았다. 세계화와 런던의 금융 빅뱅에 밀려 소외된 이들이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 더 힘들어졌다고 불평할 때 그들을 너무 간편하게 인종차별주의자들로 치부해버렸다.

그렇다고 영국의 민족주의가 남긴 흉한 얼룩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다.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는 이러한 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자극했다.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내각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 주축이 된 보수당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민족주의를 냉소적으로 악용했다. 영국의 외국인 혐오증은 특히 외국인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지역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런던은 압도적으로 EU 잔류 지지표가 많았다. EU 보조금으로 막대한 혜택을 받는 시골 도시 콘월은 탈퇴에 표를 던졌다.

나이와 성향이 나와 비슷한 유럽인이 지닌 가장 모순적 태도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대해 편협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들은 스핏파이어 전투기에 관한 영화 속 장면들과 처칠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 같은 우리가 자라면서 숭배했던 자유의 상징 속에 이민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심각한 편협성을 은폐하고 있다.

머리를 밀고 국기를 문신으로 새기는 등 좀 더 과격한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특유의 폭력적인 방식으로 유럽 곳곳의 경기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영국 축구 훌리건들과 닮았다. 하지만 잉글랜드 중부지역 중산층이 한때 세계적인 영국 출신 록스타들에게 열광했던 것처럼 패러지와 존슨 같은 정치인의 거짓말에 환호하는 현상은 단순히 우려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브렉시트 지지자 중 많은 사람은 여기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쟁 때의 상징들이 잘못 놓였던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 EU 탈퇴 주장은 2차 세계대전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그들은 어차피 브뤼셀 정치인들이 독재자들이라고 말한다. (대영제국의) 영국인, 아니 그냥 (잉글랜드의) 영국인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도 말한다. 수백만 유럽인들이 그들과 동의한다고 한다.

많은 유럽인이 이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이 마린 르 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헤이르트 빌더스 그리고 다른 포퓰리스트 민중선동가들을 따르는 이들이다. 이 선동가들은 국민투표를 해 정부를 약화하고 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악용해 권력을 쟁취하려 한다.

EU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다. 그런 척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유럽의 결정은 여전히 주권국가 정부들, 더 중요하게는 국민이 선출한 정부들의 끝없는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다. 비참한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신중하게 구성한 유럽의 협의체들을 없애버린다고 유럽인들의 자유가 더 잘 보장될 리는 없을 것이다.

브렉시트의 자극으로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에 대한 저항이 확산한다면 영국이 사상 최초로 유럽에서 반자유주의의 물결을 이끌게 될 것이다. 이건 영국이나 유럽에 엄청난 비극이 될 것이다. 주요 강대국들 대부분이 이미 반자유주의적 정치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비극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마지막 아이러니는 이러한 형세를 역전시키고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려가며 지켰던 자유를 수호할 마지막 희망이 독일에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우리 세대가 잔인한 폭정의 상징이라 여기며 증오했던 나라다. 하지만 최소한 아직까지 독일인들은 당황스러운 숫자의 영국인들보다는 역사에서 훨씬 많은 교훈을 배운 것 같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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