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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관중보다 포숙아, 가즈아 2018!

입력
2018.01.17 18: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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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개띠 해가 보름여 지났습니다. 이쯤이면 슬슬 확인해봐야지요. 새해 결심, 안녕들하십니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3일마다 결심하면 됩니다. 이 결심까지 무뎌진다 해도 걱정 마십시오. 이순신에겐 12척의 배가 있었듯, 우리에겐 아직 ‘설날’이 남았습니다.

새해니까 동양 고전 한 자락 꺼내 보겠습니다. 벌써 훅~ 치고 올라오는 ‘아재’ 냄새를 느끼셨다면 빨리 다른 글로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이후 사태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양 고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하긴 하는데, 고전 좀 읽었다고 툭하면 뒷짐지고 서서 옛날엔 말이야, 운을 떼는 행태를 안 좋아합니다. 정치학, 사회학 같은 현대적 학문을 했다는 분들이 옛 성현 말씀, 사자성어 끌어다 우리 대통령은, 정당은, 국민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뭐랄까, 좀 참혹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 내용이라는 게 마땅히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도덕적 훈계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굳이 몇 백, 몇 천년 전 왕조시대 사례를 끌어대야 할까 싶어섭니다.

그래서 동양 고전 책은, 조금 삐딱한 것들이 제격입니다. 그 중 하나가 ‘대륙의 마지막 스승’ 혹은 ‘대만의 국사(國師)’라 불렸다는 난화이진(1918~2012), 연식이 좀 오래되신 분들이라면 ‘남회근(南懷瑾)’이란 이름이 익숙할, 그 분의 책입니다. 유불선(儒佛仙)에 통달했다는 남회근 선생이 생전에 진행한 대중 강연을 부키 출판사에서 10여권 넘게 ‘남회근 저작선’이란 이름으로 묶어서 내놓고 있습니다. 남 선생의 매력은 동양 고전 얘기를 하면서도 ‘현대인’답게 고전에만 파묻히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동양 고전 좀 읽었노라 하는 사람은 왜 그리도 나라와 민족 운운할까요. ‘현대인’ 남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 중국의 역사서는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에 의한 인치(人治)를 표방하는데 편중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많이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성군과 현상을 자처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다 보면 왕왕 자신을 소설 주인공이나 연극 주인공인양 착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마디로 먹물 좀 든 사람 가슴에 헛바람 불어넣기 딱 좋은 게 동양 고전이라는 겁니다.

정작 고전의 고향에 사는 사람은 이처럼 고전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는데, 주변에서 어설프게 배운 우리만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사서삼경이 어쩌니 세상 다시 없을 진리인 양 부여잡고 목 매는 게 아닌가 싶어 웃음이 터집니다.

남 선생의 일침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맹자와 제자 공손추 간 문답을 풀이한 책 ‘맹자와 공손추’에 관중과 포숙아 얘기가 등장합니다. 다 아실 겁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가난해서 늘 기여 이상의 몫을 챙기던, 노모 때문에 겁쟁이란 누명을 써도 전쟁터에서 달아나야 했던, 줄 잘못 서는 바람에 정치적 고비를 맞았던 관중이었건만 친구 포숙아 덕에 제나라 재상에 오릅니다. 관중은 제환공을 춘추오패 중 첫 패자로 만들어 줍니다.

관포지교가 후세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요. 이야기 자체의 드라마틱함? 그 점도 있겠지만, 남 선생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상대방이 포숙아이고 자신은 영원한 관중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이 얘길 하면서 아마 남 선생은 능글맞게 웃었을 겁니다. 청중은 박수 치며 크게 웃었을 겁니다. 관포지교란 ‘아름다운 우정’이라 쓰고 ‘난 관중! 넌 포숙아!’라고 읽어야 하는 겁니다. 이쯤에서 저도 뒷짐 지고 헛기침 한번 한 뒤 잘난 척 한마디 남겨볼 랍니다. 올 한해 ‘아직 포숙아를 못 만난 관중’ 노릇보다 ‘내 주변 어딘가에 있을 관중을 찾아내려는 포숙아’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설날이 다가옵니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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