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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에 멍드는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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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폭에 멍드는 응급실

입력
2018.07.04 19:00
수정
2018.07.04 22:4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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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 난동 5년전 처벌 강화했지만

현장선 수사 처벌 아주 미온적

의사 간호사 등 84% 폭력 경험

가해자 81%는 음주 상태

익산병원 폭행 계기 구속수사 청원

하루 만에 지지 서명 3만명 육박

술에 취한 환자 B씨로부터 얼굴 등을 맞은 응급의학과 의사 A씨. A씨가 입었던 옷 등에도 혈흔 자국이 남아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술에 취한 환자 B씨로부터 얼굴 등을 맞은 응급의학과 의사 A씨. A씨가 입었던 옷 등에도 혈흔 자국이 남아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지난 1일 오후 10시쯤 전북 익산의 한 중소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던 응급의학과 의사인 A(37)씨가 피를 흘리며 넘어졌다. 손을 다쳐 진료를 받던 40대 남성 B씨가 "왜 나를 비웃느냐"며 A씨의 얼굴을 수 차례 주먹으로 가격했기 때문이다. 놀란 직원들이 달려가보니 A씨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B씨에게선 짙게 밴 술 냄새가 났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B씨는 연신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해당 의사를 향해 의자까지 걷어찼다.

주취자들의 크고 작은 난동으로 인해 병원 응급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가벼운 질환부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위급 상황까지 다뤄야 하는 응급실 상황을 고려해 5년 전 주취 난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 조항을 별도로 만들었지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저작권 한국일보]응급실 종사자들의폭력경험.jpg-박구원기자 /2018-07-0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응급실 종사자들의폭력경험.jpg-박구원기자 /2018-07-04(한국일보)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처치ㆍ진료시 폭행ㆍ협박 등으로 방해하거나 응급실 기물을 파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응급의료법(제12조)이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법까지 만들었지만 응급실 현장에서의 주취 폭력에 대한 수사나 처벌은 매우 미온적이다. 이번 익산병원 사건에서도 경찰의 대처가 매우 소홀했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사를 무차별 폭행했을 뿐 아니라 살해 협박이 있었음에도 경찰이 B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고 있다”며 “분초를 다투는 응급실의 폭행 현행범에 대해 이렇게 느슨하게 대처를 하니 응급실 폭행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술에 취한 60대 남자가 진찰을 하던 20대 여성 수련의의 손목을 붙들고 자신의 얼굴과 몸 이곳 저곳을 “만져보라”고 강요한 사건이 있었다. 진료가 필요한 신체 부위가 아닌데다, 원치 않는 성적 접촉에 불쾌감을 느낀 수련의는 환자의 손을 뿌리쳤고, 주변 동료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당시 경찰은 “너무 사소하고 처벌하기 애매하지 않느냐”며 돌아갔다고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욕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다시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은 ‘2차 가해’ 위협도 느껴야 한다”고 호소했다.

실제 응급의료 현장 종사자들은 응급실에서의 주취 난동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경북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9년차 간호사 이모(33)씨는 “이번 사건처럼 명백한 폭행이 있으면 경찰 신고까지 이뤄지겠지만, 성희롱을 하거나 욕설을 내뱉는 등 신고하기 애매한 행동을 많이 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원광대의대 응급의학교실팀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등 167명 대상 설문 결과 응답자 84.4%(141명)가 응급실에서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가해자 10명 중 8명(80.9%)이 음주 상태였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 폭력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가해자 구속수사 및 강력 처벌을 요청한 청원이 올라온 지 하루 만인 이날 오후 5시 현재 2만8,000여명이 동의 서명을 했고, 관련 의학회와 지역 의사회에서 앞다퉈 성명을 내놓고 있다. 박재찬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응급실의 특수성을 감안해 폭력 상황 발생시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경찰청에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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