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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손학규의 징크스

입력
2018.05.25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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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정치인 가운데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만큼 화려한 정치 경력을 가진 인물은 흔치 않다. 김근태(작고, 전 열린우리당 의장), 조영래(작고, 변호사)와 함께 ‘경기고-서울대 삼총사’로 통했고, 운동권의 맏형 노릇을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취득 후 교수를 거쳐 정계에 진출해 장관과 도지사, 의원, 야당 대표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2012년 대선 출마선언의 상징적 브랜드가 된 ‘저녁이 있는 삶’은 지금도 많이 회자된다.

▦ 정치판에서 그는 ‘운 없는 정치인’으로 불린다. 2006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쟁에 돌입하며 ‘민심 대장정 100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0년 11월 22일에는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특검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들어갔는데, 이튿날 연평도 포격 도발로 농성을 서둘러 접어야 했다. 2016년 10월 강진 토굴생활을 접고 정계복귀를 선언했지만 며칠 안 돼 ‘최순실 게이트’가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쯤 되면 ‘손학규 징크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24일 서울 송파을 재선거 출마선언 직후 터진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태는 화룡점정을 찍은 셈이다.

▦ 손 위원장이 오랫동안 잠재적 대선후보로 올랐는데도 거듭 ‘실패’한 이유로 ‘정무 감각 부족’을 꼽는 이들이 많다. 2016년의 4ㆍ13 총선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민주당이 총선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는 “정계 은퇴 약속을 지키겠다”며 거절했다. 민주당의 총선 패배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은 1당으로 올라섰다. 만약 그가 백의종군을 해서 지원했다면 민주당이 패했어도 떴을 것이고, 이겼다면 대권 잠룡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는 결국 6개월 뒤 정치 복귀를 선언하며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 바른미래당 송파을 공천 내홍 사태에서도 손 위원장은 ‘촉’ 부족을 드러냈다. 23일 언론에 불출마 뜻을 밝혔다가 다음날 출마로 입장을 바꾼 뒤 다시 25일 불출마로 오락가락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그는 강진 칩거 시절 “곰팡이처럼 피어 오르는 정치 욕심을 산 생활로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고 했다. 손 위원장은 정치가 명분과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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