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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대에 번번이 좌절... 공공의대 설립 논의 다시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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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대에 번번이 좌절... 공공의대 설립 논의 다시 수면 위로

입력
2018.04.03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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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서남대 활용안’ 구체화

서울시립대가 인수해 설립한 후

지자체서 인재추천ㆍ학비 등 부담

졸업생은 의료 취약지역서 종사

#부실화 우려 등 반대 여전

“의대생들 활용하는 방안 현실적”

공공의료인력 필요성 인식 불구

관련부처 복지부ㆍ교육부도 신중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역에 근무하거나 외상외과ㆍ산부인과 등 민간이 외면해 온 분야를 전공하는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공공의과대학’ 설립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전에도 보건복지부가 국립 공공의대 설립안을 추진한 적이 있지만 의대 정원 확대가 전제여서 의료계의 거센 반대에 밀려 좌절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폐교된 서남의대의 기존 정원(49명)을 활용하자는 것이어서 현실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일 무소속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ㆍ임실ㆍ순창)실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난달 초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공공의대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자체는 공공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대신 학생은 졸업 후 9년 동안 공공보건의료기관이나 의료취약지의 거점의료기관에서 종사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를 근거로 서울시립대가 폐교된 서남대를 인수하고, 새롭게 설립되는 서울시립대 남원캠퍼스 의과대학을 공공의대로 출범시키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된다. 구체적으로 서울시와 각 광역지자체가 공동 운영하고, 서울시는 서남대 인수, 각 지자체는 지역 인재 추천 및 교육비를 부담하는 방안이다. 의대를 마친 후 전공의 수련과 임상 실습은 서울의료원 등 각 지자체 소속 산하 의료원에서 시행한다. 사실상 전국 지자체가 연합해 각 지역에서 공공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직접 선발해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신중ㆍ부정ㆍ반발

문제는 관련 부처와 의료계 모두 긍정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애초 복지부는 취약지역 의료를 담당할 소명의식을 가진 전문인력을 양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2016년 이정현 의원이 발의해 전남지역에 국립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을 때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서남대 인수를 통한 공공의대 설립 방안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손일용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공공의료인력 양성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의대를 복지부가 아닌 지자체가 주체가 돼서 설립하는 것에 떨떠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육부는 더욱 부정적이다. 이재력 교육부 사립학교정책과장은 “이미 의대가 많이 있는데 또다시 설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국립대 의대가 공공의료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면 왜 그런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먼저 분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료계 역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강력 반대하고 있다. 의대를 설립해 제대로 된 의사를 키워내는 데는 많은 돈과 인프라가 필요한데 또 신설할 경우 서남대처럼 다시 부실화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의협 고위 인사는 “현재 의대생 중 공공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잘 육성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소명의식 인력 양성 중요, 정책 뒷받침도 절실

서남대 인수를 추진하는 시립대 측은 “현 상황에서 공공의대 외에 부족한 공공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관계부처와 입법부의 관심을 호소한다. 최병호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은 “지방 대도시 국립대 병원에서 수련한 의사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진출하거나 수익성 높은 전공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국립대의 공공의료인력 양성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애초부터 공공의료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양성하는 공공의대 설립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다른 시도들은 번번히 실패했다. 20년 전 의대 진학자 중 일부에게 장학금을 주고 일정 기간 공공의료를 담당하도록 했던 ‘공중보건 장학의사 제도’는 졸업 후 대부분 학생들이 공공의료기관 근무 대신 장학금 반납을 선택했다. 군에서 필요한 응급의학 전문의 등을 육성하기 위해 군이 도입한 육군사관생도의 서울대 의대 위탁교육 역시 다수가 피부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민간에서 선호하는 전문의를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 원장은 이에 대해 “일부 장학생들에게만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했기 때문”이라며 “공공의료를 담당하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수련하는 공공의대에서 육성된 인재들은 동문 의식도 갖고 의무기간 후에도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지자체가 운영하는 자치의대의 경우 의무근무 기간이 끝난 후에도 65%가 그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한다고 덧붙였다.

부실화 우려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재정이 취약했던 서남대와 달리 서울시와 광역지자체가 충분히 투자할 예정이고, 우수 인재를 뽑아 전국 의료원에서 수련시키기 때문에 교육의 질도 높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서남대 인수를 통한 공공의대 설립이 현실화되더라도 그것만으로 공공의료가 강화되긴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육성된 공공의사가 근무할 공공의료기관의 시설이나 인프라, 처우가 현재처럼 열악하다면 의사로서의 실력을 충분히 쌓지 못하거나 애초의 소명의식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이 계속 민간에 비해 수준이 낮다면 공공의사가 자칫 ‘2류 의사’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의료기관의 시설과 처우에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공공의료 발전계획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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