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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집잡고… 덧칠하고… '왜곡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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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집잡고… 덧칠하고… '왜곡의 흑역사'

입력
2015.0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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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탈북자 증언 흠집 내기 공세… 전체 증언 내용 허위로 몰아

日, 과거사 논점 흐르기 악용… 역사 부정하는 근거로 내세워

2013년 8월 20일 연세대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공청회에서 마이크 커비 당시 위원장이 책 '14호 수용소 탈출'을 들어 보이며 "내용이 정확하냐"고 묻고 있다. 신씨(맨 오른쪽)는 '거의 100%'라고 애매하게 답했으나 통역과정에서 '거의'가 사라졌다. 결국 17개월 지나 신씨는 증언을 일부 번복했다. 연합뉴스
2013년 8월 20일 연세대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공청회에서 마이크 커비 당시 위원장이 책 '14호 수용소 탈출'을 들어 보이며 "내용이 정확하냐"고 묻고 있다. 신씨(맨 오른쪽)는 '거의 100%'라고 애매하게 답했으나 통역과정에서 '거의'가 사라졌다. 결국 17개월 지나 신씨는 증언을 일부 번복했다. 연합뉴스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아우슈비츠 경험담을 담은 책 ‘밤(La Nuit)’을 통해 2차 대전의 비극을 알렸다. 그는 책을 영화화하자는 주변의 제안에 “진실에 허구를 섞으면 진실의 힘이 약해진다”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위젤의 이런 우려는 허구가 섞인 증언을 한 것으로 드러난 탈북자 신동혁씨 사례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아우슈비츠’인 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했다는 신씨의 증언 가운데 일부의 오류로 인해 북한 인권 참상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동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신씨의 이런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다. 북한은 작년 10월 인터넷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거짓과 진실’이란 동영상을 올리며 본격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동영상은 신씨의 아버지와 이웃을 등장시켜 신씨가 정치범수용소에 산 적이 없으며, 그가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로 신동혁 깎아 내리기를 시도한다. 동영상의 말미에 북측은 “유엔은 허위사실을 내보내기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전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북한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주목 받고 있는 탈북자 박연미(22)씨에 대한 흠집내기에도 나섰다. 함께 탈북한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박씨 증언과 달리 북측은 그의 아버지는 탈북한 적이 없으며 중국에서 숨졌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박씨가 어릴 때 탈북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는 일부 기억의 오류를 이유로 전체 증언을 허위로 몰아가기도 한다. 물론 박씨는 “아버지와 중국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북이 전체 증언을 거짓으로 만들기 위해 날조하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북한의 대응은 그 동안 일본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사가 도마 위에 오를 때면 논점을 흐리기 위해 동원해온 이른바 ‘물타기’와 유사하다. 사건의 꼬리 격인 일부 사실의 혼란을 이용해 몸통 전체인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은 중국 침략과정에서 저지른 난징(南京)대학살을 폭로한 미국의 중국계 여성작가 아이리스 장(1968~2004)의 저서 ‘난징 대학살(The Rape of Nanking)’에 사건과 무관한 사진이 함께 실렸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책에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한, 젊은이들이 교외 대학살장으로 실려가는 사진을 인용했으나 이 사진이 난징 대학살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일본 우익은 이를 꼬투리 잡아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역사를 조작하는 마녀’ 등으로 장을 몰아세우며 난징 대학살을 부정했고, 장은 결국 2004년 11월 계속된 협박을 못 이겨 권총 자살하고 말았다. 극동군사재판소에서 난징 대학살이 인정됐고 최근 중국이 7,600여 점의 증거 자료를 공개했음에도 일본은 계속 부분적 오류를 문제 삼아 전체 사건을 부정하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사히 신문은 1982년 요시다 세이지(사망)의 증언을 토대로 ‘제주도에서 200여명의 한국 여성이 위안부에 강제 동원됐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1991년에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아사히 신문은 작년 8월 ‘요시다 세이지의 자료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위안부 관련 12건의 기사를 취소했다. 그러자 일본 극우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위안부 강제연행의 꼬리표로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기사를 작성한 기자까지 위협했다. 또 아사히 신문을 상대로 허위보도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8,700여명이 집단소송을 제기, 다른 언론의 위안부 보도에 재갈을 물리기까지 했다. 이는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한 고노담화를 비롯 위안부 강제동원의 다양한 증거자료가 있음에도, 일부 공개된 증거의 오류를 들어 위안부의 진실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인권문제는 인정하지 않고 신씨 문제만 물고 늘어지는 행태는 일본의 이런 행태와 다르지 않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북한이 폐쇄된 인권침해 사회라는 것을 감추려고 논점전환의 오류라는 뻔한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런 진실 물타기에 대해 ‘사실 대 사실’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씨는 북한의 동영상이 나오고 한 달이 지난 작년 11월 28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문을 썼다. 그는 북한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기 보다 아버지의 생존에 놀랐고 북한인권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뿐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며 “신씨가 당시 사실을 가지고 북측에 재반박하고 잘못한 부분을 인정했더라면 지금의 파장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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