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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매너가 나라를 만든다

입력
2015.09.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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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다. 영화 스틸컷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다. 영화 스틸컷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은 전형적인 영국 문화나 영국다운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흥행한 영화 ‘킹스맨’이 좋은 예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거둔 성공은 흥미롭다. 개봉 후 4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4,000만달러라는 성적을 거둔 ‘킹스맨’은 단박에 한국 박스 오피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18세 이상 관람가 외국영화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었다. 몇 주간 ‘킹스맨’은 나의 한국인 학생들, 친구들, 동료들 사이에서 큰 화제거리였다.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한국인들에게 이토록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킹스맨’은 정형화된 영국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영화다. 영국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들이 과장되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영화의 모든 핵심 장면들은 전형적인 영국인들의 장소로 알려진 펍에서 벌어진다. 해리 역의 콜린 퍼스와 에그시 역의 타론 에거튼은 펍을 배경으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배경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에도 사람들이 영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해리는 콧대 높은 상류층으로 고급 언어를 구사하며 학식이 높고 옷을 잘 빼 입은 전형적인 영국 신사이다. 이러한 신사 이미지는 외모와 사회적 지위가 최우선시 되던 영국 빅토리안 시대의 풍습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진화했고 제임스 본드라는 상징적인 인물로 재탄생됐다. 양쪽 가슴에 포켓이 달린 수트, 검정색 우산, 반짝이는 구두와 고급스러운 말투는 부와 학식 그리고 지위를 상징한다. 에그시 또한 또 다른 노선의 정형화된 영국 이미지가 반영된 캐릭터이다. 그의 옷과 말투, 행동들은 영국에서 ‘채브(Chav)’ 또는 ‘후디(Hoodie)’라고 지칭되는 새로운 부류의 모습을 띄고 있다. 채브는 불량한 영국 청소년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로 옥스포드 사전에는 ‘비싼 브랜드 또는 이미테이션으로 치장한 거만하고 예의 없는 하류층 젊은이’라고 정의한다.

에그시와 해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여러 명의 채브가 나타나 시비를 건다. 이는 싸움으로 번지고 영국 신사와 채브가 정면 충돌한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해리는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를 날린다. 이 장면은 신사와 채브 이미지의 충돌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마치 둘 중 어느 쪽이 더 강한지 힘겨루기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는 예절 바른 영국 신사의 이미지가 우세했지만 최근 들어 판도가 바뀌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영국 여행객들의 민폐 행동과 술버릇을 지적하면서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 알고 있다. 영국 사회에는 지금도 계층의 선이 존재한다. ‘킹스맨’은 이를 바탕으로 계층 상승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해리는 엄격한 교육을 통해 에그시를 채브에서 영국 신사로 끌어올리려 한다. 신사답게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행동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에그시는 하류에서 벗어나 상류층으로 올라간다.

이러한 엄격한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 과정이 한국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든 또 다른 강력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영화 전문가 제이슨 베어베이스는 해리와 에그시의 관계에 한국 관객들이 깊이 매료되었다고 했다. 소설가 목혜원은 하류층의 루저 에그시가 영웅이 되고 결과적으로 상류층 집단에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이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들에 동의한다. 영화는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로써 해리와 에그시의 관계를 통해 한 사람의 계층 상승을 보여준다. 그 속에는 ‘어르신’ 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의 말과 행동, 몸가짐 등을 엄격히 배우고 따르면 성공한다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양반 문화의 성격도 찾아볼 수 있다.

배리 웰시 숙명여대 객원교수ㆍ서울북앤컬처클럽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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