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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범죄에 대한 검찰의 색다른 기소

입력
2017.05.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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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2011년 유성기업 ‘노조파괴’에 관여한 혐의로 현대자동차 임직원 4명을 기소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유성기업의 노조 파업과 직장폐쇄로 부품 공급 에 차질이 생기자 주문량을 줄이겠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이에 유성기업이 제2노조 가입 인원을 늘려 생산을 정상화하겠다고 알려오자, 현대자동차는 그러한 부당노동행위를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시기별 제2노조 가입 인원 목표치를 주고 관리하며, ‘노조파괴’에 가담한 노무사를 사옥으로 불러 회의를 열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하청기업의 노사관계에 관여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하청기업 근로자들의 노조결성이나 가입을 이유로 하청계약을 해지하는 것이다. 특히 소규모 하청기업에 대한 이런 조치는 곧바로 기업의 폐쇄, 근로자들의 해고 및 노조 와해로 이어지게 된다. 대기업의 하청기업에 대한 계약 관계의 해지가 개별 근로자에게는, 노동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한 일자리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기업은 노조와 관련한 대기업의 뜻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은 하청관계의 먹이사슬에 놓인 근로자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검찰은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파업이 일어나면, 단위노조의 간부뿐만 아니라 상급단체의 간부들까지 철저하게 챙겨 공동정범으로 묶어 기소하던 검찰의 성실함은 노동기본권을 침해한 노동범죄 기업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그저 순박한 눈빛으로, 대기업은 그 근로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므로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 방도가 없다고 변명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형법에는 공동정범과 교사범, 방조범, 간접정범 등 다양한 공범 유형이 규정되어 있다. 이들 규정을 노동범죄 기업에 꼼꼼하게 적용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데도, 검찰의 수사 능력과 해박한 법리는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는 발휘되지 않는다.

검찰의 이런 변명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하나의 자본 단위에 의해 통제되고 지휘되는 생산관계라는 점에 근거해서 법률상 책임 주체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생산 조직의 결합은 이런 모습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하나의 법인격에 의해 결합되는 방식 외에도 오너십, 계약, 권위 등으로써 결속된다. 예컨대 지주회사 또는 재벌처럼 여러 회사가 단일한 오너십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오너십), 유성기업 사건에서 보듯이 기업 간 계약을 통해 생산 조직이 결합되는 경우(계약), 그리고 투자회사와 기업 간의 관계에서 개별 기업의 의사 결정이 투자회사에 종속되는 경우(권위) 등의 방식이 기업의 결합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기업은 위 방식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생산 조직의 경계를 결정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이러한 기업의 규모와 결합 방식에 관한 결정이 기업의 노동법적 책임 범위를 획정하는 수단이 되고, 이를 통해 기업의 뜻대로 강행법규의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기업의 규모 및 결합 방식에 관한 기업 경영의 자유는, 법 집행 기관의 낮은 이해 수준과 소극적 태도와 연결되어 근로자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자유로 활용된다.

결국 기업 경영의 자유와 근로자의 노동기본권을 함께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업 결합 방식에 맞춰 노동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꼼꼼하게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 집행 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가 원청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더욱 법집행 의지를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점에서 검찰의 이번 기소는 노동 범죄에 대한 적극적 수사 의지를 밝힌, 신선하고 새로운 신호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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