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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일수록 남자 초등교사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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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일수록 남자 초등교사가 안 보인다

입력
2018.03.22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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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부족한 男교사는 승진 위해

가산점 많은 농어촌ㆍ벽지에 몰려

男교사 비율 대도시 <읍> <면 순 < strong>

학부모도 교단 성비 불균형 불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5년 차 초등 교사인 김상훈(30ㆍ가명)씨가 소속된 경기 지역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총 45명이다. 이 중 남교사는 김씨를 포함해 단 4명(8.9%)뿐. 그마저도 김씨만 30대이고, 나머지 3명은 모두 50대다. 김씨는 “어린 남교사라는 이유로 학교의 크고 작은 거친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씨가 말하는 ‘거친 업무’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특별관리대상 학생이 속한 학급 담임을 맡는 것부터 급작스럽게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 홀로 넓은 운동장 제설작업을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김씨는 “우리 학교처럼 남교사가 4명이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문 편” 이라며 “특히 대도시 학교일수록 남교사가 아예 없거나 1명 밖에 없는 학교도 많다”고 설명했다.

교단 내 남교사보다 여교사가 월등히 많은 여초(女超) 현상이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는 가운데 특히 도시지역 학교에서 남교사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부족한 남교사들이 농어촌ㆍ벽지 등 외곽으로 쏠리며 도시 학교에서는 남교사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남교사는 물론 여교사들까지도 적잖은 불편을 겪는 것은 물론 학교 현장에서 균형이 무너진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성 역할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등학교 교사 18만4,358명 중 여성 비율은 77.1%에 달했다. 조사가 시작된 1999년(62.7%)보다 14.4%포인트 높아진 역대 최고다. 더욱이 올해 서울 지역 초등 임용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88.9%로 2015학년도(89.0%)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여풍은 점점 더 거세지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학생 수가 많은 도시 학교 일수록 남교사 비중이 적어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도시 남교사들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교육부 교육통계서비스를 분석해 본 결과 17개 시ㆍ도 내 지역별 남교사 평균 비율은 도시 18.8%, 읍 31.9%, 면 38.1%, 도서벽지 50.8%로 지역규모가 클수록 적었다.

이처럼 남교사들이 되레 농어촌ㆍ벽지에 몰리는 1차적인 배경은 ‘주변 시선으로 인한 승진 구조’다. 사회적으로 “남교사는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시선이 강화되면서 초년 때부터 승진을 목표로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큰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농어촌ㆍ벽지 근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에 따르면, 도서ㆍ벽지 및 농어촌 학교 근무 시 받는 가산점은 최대 10점이다. 연구학교 근무 경력(월 0.021점ㆍ총 1.25점 초과 불가)이나 연수 이수(1학점 당 0.02점ㆍ총 1점 초과 불가) 등 다른 가산점 항목보다 월등히 높은 데다, 연수 등 항목은 많은 교사들이 받는 점수이기 때문에 승진을 위해서는 지역 가산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전북 전주의 한 초등교사 이모(31)씨도 “’남교사는 승진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승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편한 도시를 떠나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5~10년을 근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어촌ㆍ도서벽지 지역의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여교사들이 도시 학교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교육 여건이 미비한 것은 물론 생활을 위한 관사 및 보육기관 부족 등 문제들이 지적된 지 오래지만, 교육당국이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6년 전남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이후 여교사들의 도서벽지 근무 기피는 더욱 심해졌다. 전국 도서벽지 학교의 여교사 총 수는 2015년 1,887명에서 2016년 1,868명, 지난해 1,766명으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10년 차 초등 여교사 유모(37)씨는 “여교사들도 승진 욕심이 없진 않지만 벽지 학교로 갈수록 치안 문제가 걱정돼 쉽게 선택하긴 어렵다”며 “아직까지는 육아 부담이 여성 쪽에 있기 때문에 자녀 교육 환경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기피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특히 도시 학교에서 남교사들이 느끼는 교단 내 차별 사례는 적지 않다. 보통 교사들이 다루기 힘들어 하는 1학년이나 5ㆍ6학년 반의 담임을 맡는 것은 물론 체육이나 학교폭력 전담 교사를 맡기 일쑤라는 것이다. 경기의 또다른 초교 남교사 이모(31)씨는 “임용된 지 6년 차인데 4년 간 기피 학년인 6학년 담임을 맡았고, 후배 남교사도 2년 째 체육전담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교사들과 연령이 높은 남교사들은 확실히 담임 및 업무 배정에서 배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불만이 남교사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학부모들과 여교사들도 아쉬움을 털어놓고 있다. 초3 학부모 서모(40)씨는 “남학생들이 여학생과 다투면 말리는 여자 선생님들이 ‘너가 남자니까 참아라’는 식의 발언을 한다고 들었다”며 “아들을 둔 엄마 입장에서는 집에서 엄마, 아빠의 모습을 고르게 보고 자라듯 학교에서도 다양한 성 역할을 보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5년 차 초등 여교사인 최모(29)씨도 “성적으로 많이 성숙하거나 장난이 지나칠 정도로 심한 남학생들을 교육하는 데는 남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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