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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랑 산다] 토끼가 멍청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입력
2018.05.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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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내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는 토끼 랄라.
얼굴을 내밀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는 토끼 랄라.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 직전. 조금만 더 자고 싶지만 토끼 랄라는 어김없이 밥을 달라며 보챈다. 짜증을 억누르며 상냥한 목소리로 “랄라야~, 맘마 먹을까?”라고 말을 건네면 랄라는 자기 얼굴의 2배가 넘는 커다란 귀 한쪽을 내게 휙 돌린다. 밥을 내놓으라는 신호다. ‘내가 귀를 기울여 몸소 너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이제 먹을 걸을 달라’는 의미다.

랄라에게 사료를 주려고 몸을 일으키면 그제서야 “띠리리리” 알람이 울린다. 똑똑한 랄라는 정확히 자신의 아침 식사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가 밥을 줄지도 알고 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항상 같은 시간에 밥 달라고 보채는 걸 보면 토끼는 아주 똑똑한 동물이다.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반려동물과 함께 온 사람들에게 듣는 질문이 있다. “토끼는 자기 이름을 알아듣나요?” ‘토끼는 멍청하지 않냐’는 질문을 주인인 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 말한 것이다. 지난달부터 연재중인 ‘토끼와 산다’의 댓글 중엔 ‘토끼는 멍청한 동물일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종종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드라이브 중인 토끼 랄라.
드라이브 중인 토끼 랄라.

사람들 생각처럼 토끼는 바보일까?

미국 마이애미 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진화 생물학자 다나 클렘펠스는 16마리의 토끼 그룹을 관찰해 그들의 지능을 연구했다. 클렘펠스는 2013년부터 펫 파인더 등 여러 반려동물 관련 단체에 “토끼는 자신의 이름과 간단한 단어에 반응한다. 장벽을 넘거나 통과하는 것에 능숙하고 쓰레기통도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토끼가 장애물을 넘는 대회도 1970년대 초반 스웨덴에서 시작해 영국 등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대회 영상 속 토끼는 주인 손짓에 따라 자기 키보다 높은 장애물을 ‘껑충’ 뛰어넘는다. 토끼 점핑 대회에는 직선 코스와 곡선 코스가 있는데 훈련된 토끼들은 아무리 어려운 코스라도 거뜬히 완주해낸다.

지능지수가 50 정도로 알려진 토끼는 다른 반려동물들처럼 어떻게 교육받느냐에 따라 ‘똑똑한 토끼’가 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토끼가 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본적인 훈련도 불가능한 ‘멍청한’ 토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토끼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토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인의 관심에 따라 얼마든지 영특한 토끼가 될 수 있다.

훈련된 토끼는 부르면 달려온다

나의 토끼 랄라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듣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루에도 나는 수십번씩 “랄라”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는 반드시 맛있는 사료나 간식을 준다. 먹성 좋은 랄라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질의응답 사이트 ‘쿼라(Quora)’에는 미국의 토끼 반려인들이 토끼 지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은 글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인 토끼를 키우고 있다는 한 미국 네티즌은 “길들여진 토끼는 똑똑하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내가 기르는 토끼 ‘오스카 와일드’는 많은 명령을 알고 있고 항상 내 부름에 달려왔다”며 “내가 하는 일에 호기심이 많아서 책상 위로 뛰어올라오는 습관이 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토끼가 사람들 생각과 달리 얼마나 똑똑한지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 외 많은 토끼 반려인들이 “토끼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똑똑하다. 제발 토끼가 멍청하다는 편견을 버려달라”는 댓글을 달았다.

풀을 먹던 토끼 랄라가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풀을 먹던 토끼 랄라가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동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토끼 랄라.
이동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토끼 랄라.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처음 랄라를 집에 데려왔을 때 아기 토끼가 내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랄라’라는 이름을 붙인 후 매일 그 이름을 불러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아기 토끼가 어느새 “랄라”라는 외침을 들으면 저 멀리서도 ‘껑충껑충’ 뛰어왔다. 그리고는 토끼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을 내게 해준다. 혀로 손을 핥아주는 ‘래빗 키스’(Rabbit kiss)다.

랄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난 후에는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맘마’, ‘까까’를 익혔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랄라는 음식과 관련된 단어는 기가 막히게 빨리 알아듣는다.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랄라에게 “딸기 먹자”, “이거 물면 혼난다”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말을 건넸다. 그러면 어김없이 랄라는 큰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말에 따라 행동했다.

배고플 때를 노려 훈련하자

토끼에게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나는 랄라가 어릴 때 체계적인 훈련을 시켜주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토끼를 위한 전문 교육용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요즘 반려견들에게 유행인 후각 활동 놀이 용품 ‘노즈워크(Nosework)’ 담요도 토끼 교육에 이용할 수 있다. 노즈워크 담요는 천에 여러 주머니 등을 만들어 간식을 숨겨놓는 놀이용품인데 반려동물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데 좋고 차분함을 길러준다. 후각이 예민한 토끼도 반려견처럼 노즈워크를 활용해 교육할 수 있다. 얼마 전 랄라에게 노즈워크 담요를 줬더니 긴 다리를 적극 활용해서 좋아하는 간식만 쏙쏙 빼먹었다.

해외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진 교육 용품으로 훈련 받는 토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토끼 관련 교육 사이트 ‘번 스페이스’ 등에는 간식이 들어있는 교육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토끼들은 주인이 먼저 해결 방법을 보여주면 대부분 시행착오 없이 가뿐히 문제를 해결해 낸다. 토끼 교육 사이트들에 따르면 교육은 주로 토끼 식사 시간에 하면 좋다. ‘배고픔’이 훌륭한 교육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고픔 때문에 간식이 숨겨진 교육 용품을 찾았던 토끼들은 문제를 해결한 후 나름의 보람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영상들을 보면 토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똑똑한 것 같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단서에 반응하는 능력을 지녔다. 나는 아직 랄라에게 이런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영상 속 토끼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천재 토끼’ 타이틀에 욕심이 생긴다. 랄라와 함께 노력해 ‘천재 토끼’가 될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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