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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시작된 실험... 인류의 경계를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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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시작된 실험... 인류의 경계를 더듬다

입력
2017.02.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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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영국 노총각이

인간적 면모 벗어나기에 도전

염소 흉내내기 준비 과정서

진화ㆍ문명 등 이야기 풀어내

복잡한 인간계를 떠나 염소가 되길 꿈꾼 토머스 트웨이츠. 마침내 알프스 산맥에 올라 진짜 염소의 격한 환영 인사를 받고 있다. 책세상 제공
복잡한 인간계를 떠나 염소가 되길 꿈꾼 토머스 트웨이츠. 마침내 알프스 산맥에 올라 진짜 염소의 격한 환영 인사를 받고 있다. 책세상 제공

염소가 된 인간

토머스 트웨이츠 지음ㆍ황성원 옮김

책세상 발행ㆍ312쪽ㆍ1만4,800원

큭큭큭. 사람이 염소가 되겠다니 이 무슨 미친 짓인가. 그 사람 참 밥 먹고 되게 할 일도 없네. 이렇게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먼저 간단한 퀴즈. 숫사슴 가운데 지나치게 뿔이 큰 종류가 있다. 왜 그럴까. 다들 답을 댈 수 있다. 더 좋은 짝을 차지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다. 그런데, 그 뿔이 지나치게 크다면? 그 뿔 때문에 빨리 달리지도 못해 다른 짐승에 잡혀 죽고, 싸우다 뿔이 얽히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굶어 죽어야 할 판이라면?

수컷이란 늙으나 젊으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저 ‘힘!’ 뿐인 건가. 아니, 이리 말할 게 아니다. 요즘은 비주얼 시대 아니던가. 사슴은 머리 작고 다리 길고 근육도 좋아 비주얼이 받쳐주니까 낭만 판타지 한번 덧씌워볼 만하다. 차라리 잡혀 죽고 굶어 죽을지언정 사랑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타고난 사랑꾼!

답은 의외로 허무하다. 사슴이 덩치가 커질 때 뿔도 같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나, 덩치가 다시 작아지는 와중에 뿔이 진화적 선택의 압력을 덜 받았기 때문에 뿔이 작아지는 속도가 훨씬 더 느렸다. 해서 뿔이 기괴할 정도로 큰 사슴이 존재한다.

진화론은 가끔 진화로 모든 걸 설명하려다 보니 코는 안경 받치고, 귀는 안경 걸기 위해 생겼다는 식의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그건 진화가 말 그대로 ‘제 멋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그런 식으로 이루지지 않는다. 지구상 존재인 이상 주어진 물리화학 법칙과 개체의 생물학적 조건 내에서 이뤄진다. 네이처지 편집장을 지낸 물리학자 필립 볼이 형태학 3부작 ‘모양’ ‘흐름’ ‘가지’(사이언스북스 발행)를 통해 반복해서 설명해주는 바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가 된 인간’은 웃을 틈새가 전혀 없이 중대한, 진화론적이며 인류학적인 실험이다.

먼저 토머스 트웨이츠. 예술하는 영국 노총각이다. ‘예술’, ‘영국’, ‘노총각’이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얼마나 끼를 부려대는지, 또 얼마나 수다스러운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 사람, 어느 날 문득 ‘코끼리 팔자가 상팔자’란 생각에 사로잡혀 ‘코끼리 되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무 걱정 없이 풀밭을 노닐고 싶던 차에 도전해볼 만한 동물을 물색해보니 덩치 크고 목 짧은 코끼리가 제격 같았다. 그러나 외골격 자체, 그러니까 물리적, 생물학적 조건 자체가 맞지 않았다. 더구나 돌고래, 침팬지, 고릴라처럼 코끼리는 섬세하고 예민한 동물이다. 동료의 죽음을 이해하고 슬퍼할 줄도 안다. 인간적 면모를 벗어나기 위한 도전인데, 코끼리엔 인간적 면모가 많다.

그러다 네덜란드의 점성술자 아네테에게 ‘차라리 염소가 되라’는 계시를 받는다. 사람은 늘 동물되기를 꿈꿔왔다는 점에서 샤머니즘에 대해서도 배운다. 인간이 동물이 되고자 한 역사는 유구하다. “동물을 사냥해서 죽인 뒤 먹어야 하는데 그 동물이 사람과 같다면 그건 살인이자 식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술사가 동물이 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물을 죽인 것에 대한 용서를 동물의 영혼에게 구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저자는 4만년 전 만들어진 독일 홀렌슈타인 슈타델 동굴의 ‘사자인간’ 조각, 쇼베 동굴과 트루아프레르 동굴의 벽화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이어 저자는 염소의 마음을 알고자 염소 행동 전문가 앨런 맥엘리곳 박사를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뿔과 치아가 작아지고 체구가 왜소해지며 얼굴이 평평해지고 귀가 축 처지는 경향이 있다. 다 큰 뒤에도 아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니까 더 많이 놀고 동성에게 더 친밀함을 보이며 다른 개체에게 더 관대함을 보인다. 길들여지면서 뇌가 줄어들었다”는 식으로 염소의 진화 방향에 대해 공부한다.

그 다음에는 왕립수의학대학 구조동작연구실의 존 허친슨 교수를 찾아간다. 인간과 염소의 해부학적 상동구조를 분석한 뒤 어떤 점을 보강해야 저자가 실제 염소처럼 네 발로 움직일 수 있는지 고민한다. 큰 머리, 짧은 팔, 이족보행으로 진화해버린 인간은 염소처럼 뛸 수 없다. 더구나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버린 물리적 진화의 결과로 인해 저자가 실제 네다리로 자유롭게 뛸 수 있다 하더라도 “사지로 땅을 때리는 연속적 동작의 리듬은 우리 뇌에 생경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을 듣는다.

이쯤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낄낄대며 지지리도 하릴없는 이상한 녀석이 벌이는 엉뚱한 짓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의외로 인류 진화와 종교와 문명의 발생에 대한 풍부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아이다운 호기심 그 자체로 말이다. 그 덕분에 비록 희한한 방식이긴 하지만, 인간의 경계를 더듬어본다는 점에서 교양인문서 혹은 대중과학책으로 손색이 없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본다는 이 시대에 수퍼맨도, 배트맨도 아닌 고트맨(Goatman)이라니 이 무슨 역주행인가 싶긴 하지만.

이족보행 인류는 어떻게 사족보행 염소가 될 수 있는가. 토마스 트웨이츠의 첫 번째 시도. 책세상 제공
이족보행 인류는 어떻게 사족보행 염소가 될 수 있는가. 토마스 트웨이츠의 첫 번째 시도. 책세상 제공
이족보행 인류는 어떻게 사족보행 염소가 될 수 있는가. 토머스 트웨이츠의 두 번째 실험. 책세상 제공
이족보행 인류는 어떻게 사족보행 염소가 될 수 있는가. 토머스 트웨이츠의 두 번째 실험. 책세상 제공

그래서 저자는 염소가 됐던가? 염소 변신 복장을 완성한 뒤 스위스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염소 떼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데 성공한다. 심지어 염소를 치는 목동에게서 “쭉 관찰해보니 당신이 염소떼한테 받아들여졌다”는 찬사까지 받는다. 그리고 진정한 염소라는 의미에서 목동에게서 받은 ‘염소 방울’ 하나 목에 달랑달랑 메고는 알프스산맥을 넘었다. 이 프로젝트로 이그노벨상(기발하고 엉뚱하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주는 상) 생물학상도 받았다.

부러운 풍경은 이 프로젝트를 가능케 한 문화다. 저자는 “늘 하던 대로, 귀찮게 졸라대는 메일을 보내고 난 뒤” 전문가들을 만나는데, 의외로 이들은 진지하게 도움을 주려 애쓴다. 하기야 이 프로젝트 자체가 영국의 생명과학연구재단인 웰컴 트러스트의 기금 지원으로 시작됐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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