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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보기]카카오 찾아간 고용부의 ‘어설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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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보기]카카오 찾아간 고용부의 ‘어설픈 제안’

입력
2017.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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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업무지시 줄이기 위해 예약전송 기능 추가해달라” 요청

다른 메신저 많아 실효성 떨어져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는 현대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인 동시에 직장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지난 4일 취업포탈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9명(85.5%)이 ‘퇴근 후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과로에 찌든 한국 사회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최근 고용노동부가 카카오 측에 제안을 하나 했는데요. 그 내용이 많이 아쉽습니다.

14일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부 실무진은 카카오 본사를 찾아 퇴근 후 업무지시를 막기 위해 카카오톡 내 ‘예약전송 기능’을 추가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예약문자 발송처럼 일정 시간에 맞춰 카톡을 보낼 수 있는 기능입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퇴근 후 처리해야 할 일을 주문하게 되더라도 예약 시간을 다음날 업무 시간으로 설정해 보낸다면 후배직원들이 퇴근 후에 업무 지시를 받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번 아이디어는 현실과는 꽤 동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기능의 실효성이 문제입니다. 국내 한 대기업에 재직중인 장모(33)씨는 “메신저나 이메일로 연락이 안되면 바로 전화가 걸려오는 마당에 예약 전송을 할 만큼 인내심을 가질 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메신저가 활용되는 점도 변수입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사내 임직원 전용 메신저인 ‘녹스(Knox)’를 사용하는 등 많은 기업들이 자체 메신저를 모바일에도 적용해 업무 지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안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비롯해 라인과 네이트온 등 시중의 다양한 메신저가 기업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카카오톡 하나만 손 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사자인 카카오도 이번 제안에 미지근한 모습입니다. 카카오 측은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 논의는 환영한다”라면서도 “업무 지시 문화의 개선은 카카오톡 기능 도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과로의 주범으로 꼽히는 업무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국내 최대 메신저와 함께 공동 캠페인을 추진해보자는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 보기엔 다소 민망한 수준입니다.

고용부는 이달 중 퇴근 후 업무지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 입찰공고를 낼 계획입니다. 아무쪼록 고용부가 현장 노동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방법을 고안해 내길 기대해 봅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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