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등록 : 2017.11.22 04:40
수정 : 2017.11.22 15:02

[집 공간 사람] ‘토끼 귀’처럼 생긴 집서 가족 세 명이 따로 또 같이

등록 : 2017.11.22 04:40
수정 : 2017.11.22 15:02

경기 용인시 ‘폴리하우스’

20평 남짓 지상층 둘로 나눠

부부침실-아들 방 만들고

지하 1층 거실, 지하 2층 주차장

경사지 활용으로 건폐율 극복

작게 나뉜 독립된 공간들

같이 살며 개별적 삶 가능

경기 용인시 ‘폴리하우스’는 경사지에 지은 ‘반지하’ 집이다. 건물 위로 솟은 두 개의 방 외에 나머지는 모두 법적으로 지하에 속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지하는 늘 상상 속에서만 창궐하다. 쥘 베른과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지하는 모험, 가능성, 또는 진실의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의 주거에서 지하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가 많다.

경기 용인시 고기리 계곡 인근에 지어진 ‘폴리하우스’는 6m 고저차의 경사지에 집의 절반이 묻힌 ‘반지하’ 집이다. 땅 위로 토끼 귀처럼 뾰족하게 솟은 두 개의 방엔 각각 초등학생 아들과 젊은 부부가 산다.

절반이 땅에 묻힌 집

아파트 생활에 질려 집 지을 땅을 찾아 다니던 건축주가 이곳을 발견한 건 2015년쯤이다. 짜장면 배달도 안될 만큼 외진 곳이었지만 계곡과 산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광은 짜장면을 포기하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문제는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된 지역이라 건폐율이 20% 밖에 안 된다는 것. 건축주는 과감하게 지하로 눈을 돌렸다.

“100평 땅에 집은 20평 밖에 못 짓는 셈이니 아깝잖아요. 지하는 건폐율에 포함이 안 되니까 경사지를 활용하면 절반은 지상인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폴리하우스가 자리한 곳은 남쪽으로 백운산과 광교산을 바라보는 언덕이다. 대지면적 354㎡(약 107평) 중 지상으로 건물을 올릴 수 있는 면적은 70㎡(약 21평) 정도. 나머지는 세로로 절반이 언덕에 묻힌, 법적으로는 지하다. 설계를 맡은 최장원(건축농장) 건축가는 20평 남짓의 지상층을 둘로 나눠 아들 방과 부부 침실을 만들고 지하 1층에 넓은 거실을, 지하 2층엔 주차장을 배치했다.

6m의 고저차로 인해 지하2층엔 주차장, 지하1층엔 거실, 지상층에 아들방과 부부방을 만들었다. 경사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앞마당이 생겼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지하 1층 거실. 사진 오른편의 남쪽은 지상과 환경이 비슷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지하의 환경에 가까워진다. 왼쪽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중정은 지하층에 햇볕을 들이는 숨통 역할을 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주차장에서 거실로 올라가는 계단. 위쪽에 채광창을 설치해 계단실을 밝혔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건축주의 바람 중 하나가 ‘가족실은 아기자기하되 각자의 방은 독립적인 집’이었어요. 거실은 세 가족이 모여서 먹고 놀고 쉬는 장소이자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건축주의 집무실이기도 합니다. 반면 방은 잠 잘 때 외엔 잘 안 쓰신다고 하더라고요. 20평으로는 거실에 필요한 면적을 충족시킬 수 없어 각자의 방을 만드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사각형 위에 토끼 귀처럼 두 개의 상자가 솟아오른 독특한 외관이 탄생한 연유다.

사면이 바깥으로 드러난 지상층과 달리 지하 1층은 한쪽이 언덕으로 막힌 상황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햇볕이 잘 들고 북쪽으로 갈수록 외기에서 멀어지는 상반된 환경을 활용하기 위해 건축가는 거실을 세 구역으로 나눴다. 가장 쾌적한 남쪽 구역엔 소파와 집 주인의 책상이 있다. 아이가 하교하고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남편은 종일 거실 책상에서 일하고, 가족이 다 모이면 책상을 치운 뒤 함께 저녁을 먹는다.

경사지에 짓는 집의 장점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마당이 생긴다는 것.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형성된 앞마당은 건축주가 애초에 아파트 탈출을 꿈꾼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때 한옥 툇마루에 누워 따뜻한 볕 아래 잠들곤 했는데 그 기억이 어른이 돼도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꼭 한옥이 아니어도 그 향수를 되살리고 싶었어요.”

널찍한 앞마당은 지인들의 캠핑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데크를 깔아두니 알아서 캠핑장비들을 챙겨와 하루씩 자고 간다고 한다. 주말엔 아내의 독서공간이 된다. 마당을 향해 집에서 가장 큰 창을 내 실내로 볕을 한껏 끌어 들였다.

거실 앞마당에 데크를 설치해 손님맞이 공간으로 사용한다. 지상층의 테라스는 좀더 사적인 용도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같이 살아도 개별적 삶”… 작게 나뉜 공간들

땅에 묻힌 북쪽은 수납 구역이다. 어차피 빛이 들지 않는 곳이니 벽을 따라 붙박이장을 빼곡히 짜 넣어 물건을 수납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북쪽으로 밀었다. 남쪽과 북쪽 사이, 가운뎃줄은 이른바 설비 구역이다. 화장실과 세탁실, 그리고 햇볕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은 중정이, 마치 기둥을 박아놓은 것처럼 거실 중간에 줄지어 놓인 구조가 이채롭다.

“보통 아파트 거실은 사각형 공간을 통으로 제공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사용하기가 어려워요. 어디에 뭘 놓을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뭔가로 가득 채우게 되죠. 차라리 이런 설비실을 중앙에 놓으면 살림이 주생활공간으로 밀려나오는 걸 막아, 거실을 더 질서 있게 사용하지 않을까 했습니다.”

거실 한가운데를 점유한 각각의 설비실은 집 안에 여러 개의 ‘골목’을 만든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거실에서 일하는 아빠와 마주치지 않고 복도를 굽이굽이 돌아 화장실도, 부엌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거실의 공기를 깨뜨리지 않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상층 부부방 옆에 딸린 테라스. 아들방과 부부방에 각각 테라스를 따로 뒀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지상층 아들방 앞에 딸린 테라스. 부모의 방과 마주보지 않게 창 방향을 조정해 밖으로 나와야 다른 방을 볼 수 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토끼 귀의 사이공간은 공용 테라스로 쓰인다. 바닥에 개구부를 만들어 거실의 중정으로 빛과 공기가 통하게 했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한 뼘이라도 면적을 확보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특이한 구조가 가능했던 데는 “독립”을 강조하는 건축주의 성향이 있다. 그는 아들이 미처 요청하기도 전에 미래의 아들에 ‘빙의’해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고, 아들 방 쪽엔 외부 계단까지 설치해 실내를 안 거치고 바로 올라갈 수 있게 했다. 심지어 두 방의 창 방향도 마주보지 않는다. “아내가 무슨 집에 사람 수만큼 화장실이 있냐고 좀 반대를 했었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같이 살더라도 개별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아들도 나중엔 분명히 고마워할 거예요(웃음).”

별개로 떨어진 두 개의 방은 풍성한 외부공간으로 둘러싸인다. 각 방에 개인 테라스가 딸린 건 물론이고 ‘토끼 귀’의 가운데는 공용 테라스로 쓸 수 있다.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작게 나뉜 독립된 공간들은, 필요에 따라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만 혼자 있고자 하는 바람도 흔쾌히 받아들인다. 집 이름인 ‘폴리(polyㆍ여러 개 혹은 복합을 뜻하는 접두어)하우스’에 그 바람이 녹아 들어있다.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뉜 폴리하우스는 함께 또는 따로 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두 수용한다. 노경 건축사진작가 제공

용인=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폴리하우스 측면도. 지하엔 넓은 거실, 위층엔 두 개의 개인실이 있다. 건축농장 제공

폴리하우스의 구조를 볼 수 있는 그림. 지하층 거실에 화장실, 세탁실 등이 기둥처럼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건축농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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