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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승화] 나침반(羅針盤)

입력
2016.11.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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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나에게 어김없이 다가온 귀한 손님이 있다. ‘하루’라는 신기한 손님이다. 내가 이 분은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금방 자리를 떠나는 ‘순간’과 같은 분이다. 그러나 내가 정신적으로 깨어있다면, 아름다움과 보람을 선물한다. ‘하루’가 ‘영원한 지금’으로 변한다. ‘하루’는 높은 산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걸어야 하는 일정과 같다.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험준한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이나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훈련 없이 가다간 조난할 수밖에 없다.

‘하루’ 동안 내가 등반해야 하는 산은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산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산이라면, 먼저 그 산의 정상을 정복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린 산이다. 나의 열망을 담은 나만의 산으로 마음속 깊이 심연으로 내려가야 비로소 나타나는 산이다. 지구 위에 모든 산들의 모양이 서로 다르듯이, 내가 정복해야 할 산도 나에게 유일하고 숭고하다.

내가 오늘 하루 동안 등반해야 할 산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장소이기에 낯설고 두렵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룬 수메르인들은 ‘산’을 ‘쿠르’(kur)라고 불렀다. 오늘날 중동 이라크 지방에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정착하여 도시와 문자를 발명한 수메르인들은 해발 5,000m나 되는 높은 자그로스 산을 ‘쿠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그로스 산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로 생각했다. 수메르 단어 ‘쿠르’에는 ‘사후세계, 지하세계, 터부의 장소’라는 의미도 있다. 하루는 ‘쿠르’ 처럼 오래되고 진부한 자아를 살해해야만 갈 수 있는 미지의 장소다.

‘하루’라는 산을 내 멋진 삶을 위한 의미가 있는 소중한 마디로 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생존 키트가 있다. 나침반이다. 내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정상으로 가는 최적의 길에서 이탈할 때, 나를 일깨워줄 멘토다. 자신만의 나침반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나침반을 훔쳐보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여정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지친다. 자신에게 유일한 여정이라야 신나고 몰입할 수 있다.

인류가 나침반을 발견한 시기는 11세기다. 중국 송나라 시대 심괄(沈括)이란 과학자는 ‘몽계필담’(夢溪筆談)이란 책에서 지구가 자성을 띠고 있고 자석 성분이 포함된 자침이 남북을 표시한다는 점을 처음 발견하였다. ‘동방견문록’을 저술한 마르코 폴로는 이 사실을 유럽에 알려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자석이 남북을 가리기는 이유는 지구 중심부에 지구자전축과 거의 평행하게 놓인 영구자석이 자기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나침반은 가시적인 방향을 알려주지만, 인간이 가야 할 각자의 나침반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원후 7세기에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마저 죽어 고아가 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다. 그는 청년 시절 목동으로 연명하였다. 무함마드는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양 떼에게 먹일 목초지나 물을 찾기 위해 사시사철의 변화, 별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자연과 천체의 움직임이 무함마드에게 나침반이었다.

무함마드는 25세에 메카에서 큰 대상무역을 하던 미망인 카디자와 결혼한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무함마드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심에 탐닉한 메카 상인들을 위한 삶의 나침반을 묵상하였다. 무함마드는 동료 아랍인들이 자신을 관조하고 자신도 모르게 쌓여있는 자기중심적인 습관을 직시하고 벗어 던지는 영적인 운동을 시작한다. 무슬림이라면 하루에 다섯 번씩, 천체의 움직임에 따라 오래된 자아를 벗어 던져야 한다. 이런 행위를 아랍어로 “살라트”(Salat), 즉 ‘기도’라고 부른다. ‘살라트’는 단순히 눈을 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게 부탁하는 이기적인 발언이 아니다. ‘살라트’는 행위다. 특정한 방향을 향해, 이기적인 행위를 일삼던 발, 손, 눈, 입, 그리고 머리를 땅에 대는 굴욕적인 행동이다. 이 행위는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려는 상징적인 움직임이다. 기도는 욕심으로 오래된 자아를 정신적으로 살해하려는 결심이다. 그러나 몸 전체는 자신이 열망하는 ‘최선의 자신’을 고양하기 위한 장소를 행한다.

이 장소를 향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행위를 아랍어로 ‘키블라’(qibla)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맨 처음 예루살렘을 향해 몸을 엎드려 기도했다. 예루살렘은 무함마드가 환상 중에 백마를 타고 천상을 경험한 장소였다. 그들은 메디나에서 정착한 후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키블라’란 중동여행을 하다 보면 어디에서나 발견하는 화살표 표시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스스로 물었다. “나는 내가 열망하는 최선의 길을 걷고 있는가.” 자석에는 외부자기장에 의한 일시 자석과 독자적인 영구자석이 있다. 영구자석은 외부자기장을 제거해도 장기간 자성을 지닌다. 위대한 개인이란 자신만의 나침반으로 가장 아름다운 산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라는 소중한 순간을 가다듬어 독자적인 영구자석을 끊임없이 수련하는 자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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