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논설위원

등록 : 2018.08.08 19:04

[메아리] ‘국가주의’가 두려운 게 아니다

등록 : 2018.08.08 19:04

김병준, 文 정부에 ‘국가주의’ 비판 제기

국가주의보다 견제불능 야당이 더 위험

보수 재건하려면 정책 현장서 투쟁해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정권의 ‘국가주의’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비판하는 국가주의는 ‘경제ㆍ사회 시스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지나친 상태’를 말하는 걸로 보인다. 그는 6일 당 비대위에서 “정부가 국가주의와 대중영합주의 속에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한국당이 ‘새로운 합리주의’와 ‘탈국가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국가주의 의제는 정부ㆍ여당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경제ㆍ사회 변혁에 동조하지 않는, 적지 않은 국민을 모을 공감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강행, 탈원전정책 강행 등의 정책에 대해 “지나친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진 국민이 그 만큼 많다. 국가주의 비판은 국민 삶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하는 게 옳은지를 따진다는 점에서, 홍준표 전 대표의 반(反)사회주의 캠페인과 맥을 같이 한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홍 전 대표가 내세운 선거구호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였다. 그는 진작부터 문재인 정부가 우리나라를 사회주의체제로 바꾸려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니, 차마 직설법으로 쓰지 못한 선거구호는 사실상 “민주당 찍으면 나라를 사회주의자들에게 통째 넘기게 된다”는 강한 암시이자 위협이었다.

하지만 낡은 색깔론은, 그게 보수의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안간힘이었다 해도, 매우 어리석은 시도가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유보해 온 적지 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조차 “아직 정신을 덜 차렸다” “폭망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결과는 선거참패였다.

홍 전 대표의 반사회주의 캠페인이 먹히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지금은 이데올로기 대결의 시대가 아니다. 초(超)이념사회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는 붕괴됐지만, 자본주의의 내용 역시 급변하고 있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는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낳아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오히려 훼손한다. 그래서 일찍이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발전했고, 미국에서도 케인즈 시절부터 국가가 적극 개입해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전개됐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대두 이래 심화한 사회 양극화는 계층갈등을 격화시키며 체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이듬해인 2012년 다보스포럼의 화두는 다시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명시된 대로 적정한 소득분배와 시장의 왜곡, 재벌 개혁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 규제와 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게 여야를 막론한 정치적 과제가 됐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사회민주주의 체제 변화를 도모한다 해도, 독재로 가겠다는 것이 아닌 한, 국가 역할을 강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시대정신에 따른 패러다임 전환을 과거 ‘공산화 위협’과 접목시킨 홍 전 대표의 캠페인이 철저히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김 비대위원장의 국가주의 의제 역시 국가의 역할 강화 자체를 비판하는데 그치면 결코 생산적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진짜 위험은 사회민주주의 체제 이행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 보다는 변혁 교조주의, 정책 추진의 조급성, 글로벌 경제시스템에 대한 둔감, 부분별 정책 부조화, 그리고 집권연장을 노린 포퓰리즘 등에 따른 수많은 개별 정책들의 실패가 누적되고 있는 게 더 문제다. 따라서 김 비대위원장의 국가주의 담론이 보수를 재건하고 국가의 실패를 막으려면 보수야당은 거대담론을 넘어 구체적 정책 실패의 현장에서 각개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 땡볕 아래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최저임금 정책에 저항해 나섰을 때조차, 보수와 합리주의를 떠들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니 국가주의니 따지기 앞서, 더 두려운 건 정책 실패조차 제대로 따지고 견제할 줄 모르는 야당의 현실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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