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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삶 지배하는 독재 부모가 자녀의 결정장애 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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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삶 지배하는 독재 부모가 자녀의 결정장애 키워요”

입력
2016.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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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들

아이 스스로 판단하는 기회 뺏어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다

대학서 방황하고 반수하는 엄친아

최씨 부녀 눈밖에 나지 않으려

아바타처럼 돼버린 박 대통령 등

자기정체성 없이 ‘법관 옷’만 입은

사회지도층 만들어 내는 주범

대통령이라는 사람 때문에 나라가 엉망진창이다.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을 바꿔야 하지만 먼저 답을 찾고 싶은 게 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박근혜 같은 사람이 나왔을까.’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더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어디선가 제2의 박근혜가 자라고 있으면 어쩌나, 문득 걱정됐다. 부모 처지에서 혹시라도 그렇게 될지 모를 자식을 기르고 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라 못지않게 혼란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부모들이 후회하지 않을 부모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찾아보려는 생각으로 지난달 23일 아동심리전문가 이보연(50)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을 만났다.

아동심리전문가인 이보연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은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시 상담센터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 만나 “공감능력 같은 자녀의 사회 정서 발달을 사회지도층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대통령의 공감능력 결핍”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아동심리전문가인 이보연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은 지난달 23일 경기 고양시 상담센터에서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 만나 “공감능력 같은 자녀의 사회 정서 발달을 사회지도층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대통령의 공감능력 결핍”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자녀 지나친 의존성, 윽박지르는 부모 탓

-박근혜 대통령의 현재 모습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을까요.

“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의 질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애착이론을 적용해보겠습니다.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아버지,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을까요. 그러면 엄마는 과연 편하게 육아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았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이 잘 삐치고 자기표현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는 회피형 애착 유형인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지요.

그런데 자기가 두렵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굴종하는 성인 애착 유형이 있어요. 꼭두각시처럼 최태민과 최순실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을 보면, 자기를 조종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상대에게 안 좋은 방식으로 애착되면서 저렇게 주관 없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도대체 어려서 육영수 여사와의 애착 관계는 어땠을까, 그 동안 자기 주관적으로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있었을까, 남에게 보여주는 삶만을 살았지 않았나 같은 생각이 듭니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겪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최씨 부녀의 눈 밖에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아바타처럼 된 것은 아닌가 싶네요.”

-어린이 박근혜는 특수한 경우겠지만, 비슷한 성장경험을 가진 아이들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권위에 쉽게 굴종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부모가 두렵거나, 부모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는 회피적인 애착 유형을 보여요. 사람 만나는 것을 회피하거나 딴 짓을 하지만 기가 세지 못해 두려움이 많은 아이는 ‘저 사람한테 잘못 보이면 복잡해져, 힘들어져, 피곤해져’라고 생각해 마치 입안의 혀처럼 행동하지요. 가령 아빠가 방에 들어와 뭘 찾으면 눈치껏 재떨이를 대령하거나 표정이 어두우면 시키지 않아도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합니다. 그래야 혼나지 않을 수 있고 잔소리를 안 들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지레짐작으로 행동하는 거죠. 겉으로는 굉장히 순응적이지만 사실은 부모가 두렵기 때문에 화를 피하기 위해 그러는 겁니다. 차라리 의존하거나 하라는 대로 다 해주는, 알아서 기는 식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 결정 하나를 못하는 거죠.

가끔 미치겠다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어려서는 너무나 말 잘 듣는 정말 착한 아이라고 좋아했던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됐는데도 ‘엄마 배가 아파요’(아이), ‘화장실 가’(엄마), ‘화장실인데요’(아이), ‘똥 싸’(엄마), ‘똥 쌌는데요’(아이), ‘닦아’(엄마), ‘닦았는데요’(아이), ‘물 내려!’(엄마) 식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지시를 받지 않으면 못 하는 아이가 되는 거죠.”

대치동에 있을 때 이 소장이 말한 아이들과 비슷한 아이들,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그런 ‘엄친아’들 때문에, 바로 비정상인 아이들 때문에 정상적인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핍박당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비정상으로 변질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보통 15개월에서 30개월까지 자율성이 한창 발달하는 시기에는 뭔가 스스로 하려고 해요. 키우기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도 하지요. 밥도 자기가 떠먹으려고 하는 게 당연한데 어떤 엄마는 그게 싫은 거예요. 여기저기 흘리고 지저분해지니까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지, 네가 뭘 해’ 하고 윽박지르는 거죠. 아이가 뭔가를 고르면 ‘이게 더 좋잖아, 너는 보는 눈도 없니’, 핀잔을 주는 거고요. 아이가 혼자 뭘 하려 할 때마다 항상 막았던 엄마가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겁니다. 일상에서 하나하나 워낙 오랜 시간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자신에게 판단하거나 선택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아상 자체가 완전히 부정적이고 무기력하게 된 거죠. 유아기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요.”

아동심리전문가 이보연(사진 왼쪽)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이 지난달 23일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아동심리전문가 이보연(사진 왼쪽)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이 지난달 23일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성공한 부모가 외려 아이 미래 망친다

-모든 부모가 아이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성공 경험이 있는 부모가 주로 그럽니다. 본인들이 먹고 살만한 건 그래도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갔기 때문인데, 그런 자신의 경험을 확신하면서 아이에게도 강요하는 거죠. 자기는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지만 ‘엄마가 치과의사 되래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한가한 생각은 대학 가서 하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 돼’, 그렇게 학습적인 부분에만 부모가 집착하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 본 경험이 없는 거에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 뭘 하고 싶지, 자기 정체성 형성에 꼭 필요한 고민조차 허락되지 않는 거죠. 청소년기에 꼭 형성되어야 할 발달 과업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 가서 방황하고, 용기도 없어 걸쳐놓고 반수하는 거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어쩌면 저렇게 유치하게 놀 수 있을까 싶을 때 있잖아요. 법관 옷을 입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릅니다. 자기 정체성이 없으니까 어린아이들이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산만하고 쾌락을 좇는 것처럼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비슷하게 논다는 생각이 들어요. 답답한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들이 똑똑한 척하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줄도 모르고 고집을 부린다는 거죠. 미래를 살아보지 못한 건 아이들과 똑같은데, 그리고 자신의 성공이 가능했던 고(高)성장기는 끝났는데 말입니다.”

-혹시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를 상담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회지도층 자녀 중 마약을 하거나 범죄자가 되는 경우를 보면 어릴 적에 조짐이 보였지만 부모의 명예를 위해 감추는 사례가 아마 많았을 거라고 짐작해요. 물론 요즘 30대 부모들은 조금 달라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적극적인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대체로 처음에는 머리는 좋은 듯한데 성적이 안 오른다거나 ‘틱’처럼 겉으로 이상증상이 나타났을 때 오는 편입니다.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못 어울리면 좀 어때? 굳이 어울려야 돼?’,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어요. 공감능력 같은 사회 정서 발달이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데도 사회지도층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저러는 거잖아요. 국민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니까 이 지경을 만든 거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 지도층 인사들이 자칫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 소장은 경고한다. 보다 분명하게 부모로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질문을 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영조와 사도세자를 분석해볼 수 있을까요.

“영조가 한 개인의 정체성보다 장차 조선의 ‘왕’이 될 존재로서 아들을 바라본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세자가 개인으로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재능이 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신하와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교육만을 강요한 것이 문제였지요. 만일 사도세자가 평범한 존재였다면 영조의 마음에는 완전히 들지 않더라도 어찌어찌 왕위를 이어나갈 수 있었겠지만,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존재라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 것 아닌가 합니다. 또한 영조 역시 왕이 아니었더라면 사도세자를 그리 미워하지 않았겠지요.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부모와 똑같은 존재가 아닌, 그래서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걸 간과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비극입니다. 현대 사회에도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강요하는 경우겠지요.”

이제 보다 분명해진 것 같다. 독재자처럼 아이의 삶을 지배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과 돈의 세습이 강한 지배라면 지시와 잔소리는 약한 지배다. 자신의 뜻을 세우기 위해 방황하는 아이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고 부모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봐야만 안심하는 부모라면 조심할 일이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최근 100년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올바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부모들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성공 사례처럼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들이 부모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고, 특히 대치동의 일부 극성스런 부모의 이야기가 분위기를 끌고 가고 있어 걱정된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들처럼 아이들도 학교와 가정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염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역할을 하면서도 꼭 지켜야 할 원칙은 민주주의여야 하지 않을까.

행복한공부연구소장

▦이보연 소장은

-숙명여대 대학원 아동심리 전공

-1966년 인천 출생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EBS ‘부모’ 등 자문위원

-현재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 한국아동심리재활학회 이사, 한국공인놀이치료사협회 이사

-‘부모의 심리학’ ‘사랑이 서툰 엄마 사랑이 고픈 아이’ ‘애착육아의 기적’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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