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컴퍼니 인사이드] 귀뚜라미와 혈투 끝 ‘1등 보일러社’… 3세 승계 터 닦아

입력
2017.04.09 20:00
0 0

‘아버님 댁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TV광고 히트에 90년대 업계 광고전쟁

세계 30개국에 수출… 매출 49% 차지

내수시장 역성장에 돌파구 모색 중

`우리가 1등이다. 아니다 우리가 1등이다.`

2013년 1월 보일러 업계의 눈과 귀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쏠렸다. 매년 겨울이면 반복되던 보일러 업체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의 1등 논쟁에 대해 공정위가 처음으로 유권 해석을 내리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업계나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 중 보일러 업계의 1등 경쟁은 유독 치열했다. 각 사의 정확한 보일러 출하량이 집계가 되지 않는 업계의 특성상 1등 논쟁도 해마다 반복됐다.

공정위가 이 문제에 개입한 것은 귀뚜라미가 경동나비엔을 허위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경동나비엔이 TV 광고 등에 ‘국가대표, 국내판매 1등’ 등의 표현을 썼는데, 이 광고가 사실과 다르다는 게 귀뚜라미측 주장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경동나비엔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의 양사의 매출ㆍ생산량ㆍ판매량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 받아 검토한 뒤 경동나비엔의 광고 문안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는 "조사 결과 2011년에 업계 1위가 귀뚜라미에서 경동나비엔으로 바뀐 것이 맞기 때문에 경동나비엔이 사용하는 광고 문구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며 "다만 두 회사 모두 국내 대표 보일러 회사이므로 양사 모두 '국가대표'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연탄기업에 뿌리…90년대 TV광고로 인지도 높여

경동나비엔의 뿌리는 고(故) 손도익 회장이 설립한 부산 경남 대표 난방ㆍ에너지 기업인 경동원그룹이다. 손도익 회장은 1967년 부산에 ‘왕표연탄’을 설립하고 이후 도시가스, 보일러 등 난방사업을 발판으로 사세를 키워 경동원그룹을 일궜다.

2001년 손 회장이 타계한 뒤 경동원그룹은 도시가스(경동도시가스), 보일러(경동나비엔), 연탄(원진)을 주축으로 한 세 개의 회사로 분리된다.

현재 손도익 회장의 장남인 손경호(74) 회장이 경동도시가스를, 차남인 손연호(67) 회장이 경동나비엔을, 삼남인 손달호(61) 회장이 원진을 독자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계열 분리된 세 개의 기업 중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기업은 손연호 회장의 경동나비엔이다. 경동나비엔은 1990년대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는 카피를 앞세운 TV 광고로 단박에 인지도를 높였다. 귀뚜라미, 대성셀틱, 린나이 등 다른 보일러 업체들이 감각적인 TV광고로 응수를 하며 보일러 업계 광고 전쟁이 본격화 된 것도 이맘때부터다.

보일러 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국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보일러 업체 간 대 혈투가 벌어졌던 시기”라며 “현재는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 린나이 3강에 다른 업체들이 추격하는 양상으로 어느 정도 시장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매출의 50%는 수출…내수 시장 성장 둔화는 고민

국내 보일러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경동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시장 공략에 본격 나선다. 주 수출품은 보일러가 아닌 온수기였다. 온돌문화가 없는 서구권에서는 보일러보다는 뜨거운 물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순간식 온수기에 대한 수요가 더 높았다.

경동나비엔은 사용한 열을 한번 더 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콘덴싱 가스온수기’를 출시해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고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장기화된 고유가로 당시 미국은 고효율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이는 경동의 온수기 판매증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후 경동은 러시아와 중국 등 세계 30여 개 나라로 라디에이터 히터용 보일러와 온수기 등을 수출하며 내수기업이라는 딱지를 떼는 데도 성공한다. 지난해 경동나비엔의 수출액은 2,847억원으로 전체 매출 5,823억원의 48.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의 나머지 절반인 내수 시장의 성장 동력이 갈수록 줄어들어 고민이다. 국내 보일러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국내 보일러 업체간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 지고 있다. 실제 보일러 내수시장은 6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이며 역성장하는 추세다. 경동나비엔은 온수매트 등 비보일러 난방기구 판매로 돌파구를 열어보려 하지만 아직 보일러를 대체할 정도로 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구현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보일러 시장 악화로 경동나비엔의 올해 영업이익률이지난해 대비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둔 경영 속 경영권 승계 터닦기 분주

2001년 경동원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해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한 손연호 회장은 회사의 주요경영사항은 직접 결정하지만 대외활동에는 잘 나서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전문 경영인을 대표이사로 발탁해 회사 경영을 분담하는 것도 손 회장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이다.

손 회장은 2004년 이후 모두 3명의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해 회사 경영을 맡겨왔다. 지난 1월에는 코웨이 전 대표를 지낸 홍준기(60) 씨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3기 전문경영인 체제를 열었다.

오너 회장과 전문경영인이 호흡을 맞추는 경영 체제가 13년 간 이어지는 사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터 닦기 작업도 분주히 진행됐다.

경동나비엔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열고 손 회장의 장남 손흥락(37) 전략사업팀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손 이사는 2008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략사업팀 등에서 근무하며 경영권 후계 수업을 받아왔다.

경동나비엔의 지주사인 경동원 이사 구성을 살펴봐도 손흥락 이사의 후계자 입지는 탄탄하다. 손연호 회장은 경동원을 통해 경동나비엔을 지배하고 있는데, 손흥락 이사는 2012년 이후부터 경동원 상근 사내이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동원은 경동나비엔 지분 50.5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사실상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재계 관계자는 “손연호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경동원 지분을 손흥락 이사가 물려받으면 후계구도는 마무리 된다”며 “손 이사가 경동원 사내이사 자리에 일찌감치 선임된 것은 큰 틀의 후계구도 밑그림이 그려진 셈”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c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