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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날’과 마주한 진도 팽목항 “통곡의 기억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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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날’과 마주한 진도 팽목항 “통곡의 기억 여전”

입력
2017.03.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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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깃발 펄럭이는 소리에

추모객들 “애들 울음소리 같다”

하루 종일 무겁고 차가운 분위기

정부 세월호 인양 의지에 의문도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묶인 노란 리본이 거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묶인 노란 리본이 거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펄럭펄럭 퍼러럭.” “윙윙~ 웅웅~”

흡사 울음소리였다. 생때 같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걸린 노란 깃발과 리본들이 거센 바람에 빠르게 나부끼며 연방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 30여㎞ 떨어진 맹골수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바람에 실려온 세월호 인양 소식은 팽목항이 품고 있던 ‘통곡의 기억’을 하나 둘씩 끄집어냈다.

“바닷바람 소리가 학생들 울음소리로 들려서 슬픕니다. 바다가 잠잠해야 할 텐데….” 이름도 나이도 묻지 말라던 6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난간에 기댄 채 “모든 게 어른들 잘못이죠. 그저 용서를 빌 뿐이죠”라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랬다. 팽목항의 시간은 1,073일을 거슬러 다시 ‘그 날’과 마주하고 있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3년 만의 인양. 마냥 반길 수도 없는 ‘아픈 현실’ 앞에서 팽목항의 분위기는 하루 종일 무겁고 차가웠다.

“이젠 제발 배 안에 가만히 있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침 일찍 전북 군산에서 팽목항을 찾은 조창신씨는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미수습자 유실을 걱정한 것이었다. 그는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던 이준석 선장의 말이 오버랩돼 씁쓸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인양을 통해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리운 가족들을 찾았으면 한다”며 “반드시 잘 찾아서 팽목항에서의 오랜 기도가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설치돼 있다.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난간에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설치돼 있다.
원불교 광주ㆍ전남교구 신도들이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등대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열고 있다.
원불교 광주ㆍ전남교구 신도들이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 등대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열고 있다.

오전 내내 팽목항 주변을 감싸던 먹구름이 오후 들어 걷히면서 팽목항엔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추모객들 대부분은 정부의 세월호 인양 의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이날 오후 방파제 등대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 위령제를 열었던 장현규 원불교 광주ㆍ전남교구 사무총장은 “세월호 인양 소식을 듣고 신도 10여명과 함께 한 걸음에 달려왔다”며 “그런데 이렇게 쉽게 인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00일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던 게 거시기하다”고 말했다. 휴가를 내고 팽목항을 찾은 회사원 이현도(45ㆍ서울)씨도 “결과론이지만 세월호를 하루 만에 건져 올릴 수 있는데 3년이란 세월을 끌었다니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인양이 가시화하면서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는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도 컸다. 김명자(57ㆍ광주 동구)씨는 “세월호 침몰은 3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며 “정치권과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 날의 ‘진실’을 인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도(팽목항)=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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