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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만신창이 총리의 앞날

입력
2015.02.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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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언 못하고 책임총리 어려워

공직기강 외쳐 봐야 손가락질당할 판

박근혜 정권에 두고두고 부담 될 것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 들어가며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 들어가며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완구 총리는 후보 지명을 받고 “대통령에게 쓴소리와 직언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가 인사를 다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대통령에게 할 얘기를 못하는 총리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만두겠다”고도 했다. 이 총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제 이 총리는 가까스로 표결에서 통과했다. 그러나 검증 과정을 통해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부도덕과 부적격이라는 낙인이 온 몸에 찍혔다.‘상처뿐인 영광’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다.

이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면목이 서지 않게 됐다. 중책을 맡길 테니 청문회만 통과하라고 했더니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온 그가 무슨 낯으로 박 대통령을 보겠는가. 쓴소리는커녕 바닥에 엎드려 숨도 크게 못 쉬는 처지가 돼버렸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을 내치지 않고 거두어준 윗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인간관계의 이치다.

안 그래도 배포가 두둑한 참모들도 레이저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판인데 형편없이 찌그러진 이 총리에게 직언이나 쓴소리가 가당하기나 한 소린가. 그 것도 평소에“각하”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그가 아니던가.

책임총리도 진작에 물 건너갔다.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 해임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책임총리는 한국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역대정권에서도 그나마 김종필ㆍ이해찬 전 총리 정도가 근사치에 가까웠다. 박 대통령의 국정스타일로 볼 때 웬만해서는 권력을 누구에게 나눠주려 하지 않는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민심이반이 위험 수위에 이르자 내키지 않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정치인을 어쩔 수 없이 앉혔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책임총리를 하겠다는 사람이 제 스스로 날갯죽지를 부러뜨려 왔으니 다행도 이런 다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총리에게 새누리당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을 게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딴 마음을 먹었다면 이 총리는 졸지에 야인으로 전락했을 뻔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정부의 총사령관이 초장부터 당에 한풀 꺾이고 들어가야 할 판이니 앞으로 수없이 밀고당기기를 반복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정부 내에서도 당장 실세 간의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잘 굴러갈 때는 이완구-최경환-황우여 체제가 트로이카를 구축해 활력을 띨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왕 장관’으로 불리는 최 경제부총리가 흠집이 잔뜩 난 이 총리에게 고분고분할 리가 없다. 5선에 당 대표를 지낸 황 사회부총리 역시 호락호락하게 보일 이유가 없다. 자칫 삼각협력체제가 아니라 견제와 갈등이 일상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수십 만 명의 공무원들을 어떻게 대할지도 궁금하다. 이 총리는 후보 지명을 받자 “무너진 공지기강을 확실히 잡겠다”고 큰소리쳤다. 도덕성과 정직성에 심각한 하자가 드러난 이 총리가 공직자들 앞에서 공직기강을 외친들 제대로 먹혀 들어갈 리가 만무하다.

무엇보다 언론과의 관계가 걱정스럽다. 기자들과의 대화 녹음파일을 통해 이 총리의 비뚤어진 언론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방송사에 전화해 불리한 기사를 막았고 언론사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 언론인을 겁박한 것은 물론 심지어 희롱하고 모욕을 줬다. 권력으로 찍어 누르거나 적당히 회유하면 언제든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이 총리의 천박한 언론관은 끔찍하다. 이런 잘못된 언론관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혹 떼려다 붙인 격이 됐다. 이 총리 임명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사라지고 부담만 커졌다. 이런 사람을 총리 후보로 지목한 박 대통령의 사람 고르는 안목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다. 국민 신뢰에 금이 간 이 총리와 더불어 공무원 연금과 공직개혁 등 산적한 개혁과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걱정스러울 게다. 이 총리는 본인의 명예로 보나 나라의 앞날을 고려하더라도 차라리 되지 않은 게 나았을지 모른다. 이 나라는 이렇게 흠 없는 총리 감은 없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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