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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야근

입력
2017.01.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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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회사를 다닐 때 퇴근 시간은 다섯 시 반이었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들이 있었지만 4시 40분이 되면 출입을 막았다. 퇴근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5시가 조금 넘으면 다들 업무 정리를 했고 5시 20분이 되면 일어섰다. 그리고 정확히 5시 30분이 되면 사무실은 텅 비고 대신 청소 직원들이 진공청소기를 들고 들어왔다. 사실 나는 퇴근하고 싶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집에는 수다스런 룸메이트가 있어서 나는 그냥 조용한 곳에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청소 직원은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했고 그가 경비원을 부르는 바람에 쫓겨난 적도 있었다. 다음날 내가 하소연을 하자 상사가 말했다. “이기적인 건 너잖아. 너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 일을 하는데 불편했을 거라고.” 참 별꼴이네, 생각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는 ‘유리 천장 깨뜨린 알파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국내 최대 정보기술 업체의 대표이사가 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자는 ‘왜 운동선수가 더 뛰어난 성적을 위해 밤새 훈련하는 일은 칭찬받고 직장인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야근하는 일은 흠으로 볼까요?’라는 그녀의 평소 지론을 소개했다. 그녀는 한때 5년 동안 통틀어 4, 5일을 쉬었을 뿐이란다. 그녀는 여태 모르는 모양이지만 야근은 흠이다. 한 가정의 단란한 저녁식사를 방해하므로 흠이고, 아기가 엄마를 한없이 기다리게 되므로 그건 흠이고, 아기를 봐주는 친정엄마가 내내 고단할 것이므로 흠이다. 다른 사람의 희생이 전제되기에 야근은 흠이다. 그리고 고작 야근으로 직장인의 성실도를 판단하려는 것은 분명 폭력적이라 그것은 반드시 흠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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