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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속 얼굴 없는 군중의 삶, 거기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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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속 얼굴 없는 군중의 삶, 거기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입력
2017.10.23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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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wd'(2015) 뮤직페스티벌을 즐기는 사람들을 담았다. 성곡미술관 제공
'The Crowd'(2015) 뮤직페스티벌을 즐기는 사람들을 담았다. 성곡미술관 제공

예술은 어디 있는가. 진부한 질문에 작가 이상원(39)이 산뜻하게 답한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 순간순간에 있다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예술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이 작가의 개인전이 그를 ‘제52회 내일의 작가’로 뽑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개인전 제목 ‘이상원: The Colors of the Crowd(군중의 색채)’ 대로, 작가는 군중을 그린다. 초기엔 공원, 관광지에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화면에 담았다.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처럼, 사람들이 그림에 꽉 들어차 있다.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이다. “얼굴을 생략해 관객이 ‘그림에 내가, 지인이 있네’라고 공감하게 하고 싶었다.” 그림의 일부가 된 관객의 삶이 그림과 함께 흘러간다.

왜 군중일까.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1990년대 초 서울로 이사했다. 어딜 가나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철마다 노는 방식이 비슷한 것도 신기했다. 봄에는 꽃놀이 가고, 여름엔 수영하고, 가을엔 단풍놀이 가고, 겨울엔 스키 타고. 거기서 패턴을 찾았다.” 초기작은 X세대 작가가 그린 ‘유희하는 보통사람들’인 셈이다. 그림 앞에 서면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와글와글 들리는 것 같다. 작가의 독특한 시점 때문이다. 관객은 작가와 나란히 서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본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수리 대신 세밀하게 묘사한 옆모습이 보인다. 작가가 그저 많은 사람을 그리려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 삼아 모두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았다는 얘기다. “서양인은 내 그림을 보고 어딘가 이상하다고 한다. 전체와 부분을 한꺼번에 보는 건 아시아적 시점이라서다.”

지난 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를 그린 'The Crowd'(2017). 성곡미술관 제공
지난 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를 그린 'The Crowd'(2017). 성곡미술관 제공

작가의 최근 그림은 달라졌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군대, 청년 구직 현장 같은 무거운 장면을 따라다닌다. 초점이 한참 잘못 맞은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듯, 추상적 화면들이다. 세월호 참사가 작가의 내면을 흔들었다. 당시 작가는 워터파크로 유명한 강원도 리조트의 예술인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었다. 물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행복을 찾는다는 역설,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무기력이 작가를 절망시켰다. 그는 한 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작가 중에도 그림 잘 그리는 작가, 전통 회화를 묵묵히 지키는 작가. 홍익대와 같은 대학대학원 회화과를 나온 작가는 그렇게 불린다. 맑은 톤의 수채화가 그의 특기다. “수묵에 익숙한 건 근대 이후 한국 작가들이 수채화에 강한 이유다. 하지만 돈이 잘 안 되니까 유화, 설치, 영상 같은 다양한 작업도 한다.” 11월19일까지 열리는 전시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약 70점이 나왔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상원 작가. 성곡미술관 제공
이상원 작가. 성곡미술관 제공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휴일을 그린 'Childrens Grand Park'(2009). 성곡미술관 제공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휴일을 그린 'Childrens Grand Park'(2009). 성곡미술관 제공
'White night'(2017) 밤마다 백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겨울의 스키장이다. 성곡미술관 제공
'White night'(2017) 밤마다 백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겨울의 스키장이다. 성곡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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